‘인문학 셰프’가 우려낸 삶의 깊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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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셰프’가 우려낸 삶의 깊은 맛
  • 충청리뷰
  • 승인 2015.12.0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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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주인으로 사는 법 …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연규상 (주)열린기획 대표

▲ 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석 지음, 소나무 펴냄.

지식과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더 관용적인 사람이 될까? 가족이나 이웃과 더 잘 지내게 될까? 눈매가 더 그윽해질까? 더 생기발랄해질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도 왜 우리는 지혜롭거나 행복하지 않은가? 돈과 명예와 사랑을 쟁취하고도 우리의 삶은 왜 이리 위태로운가?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질문에 관한 책이다. 대답하는 순간 끝장이다. 저자에게 ‘질문’이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사람의 자세이고, ‘대답’이란 누군가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을 끼워 넣고 사는 사람의 태도이다.

지식이나 이념이 우리 삶을 행복으로 이끌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를 저자는 개념(槪念)의 ‘개(槪)’에서 찾는다. 쌀가게에서 정확히 한 되가 되도록 됫박 위를 싹 깎아 내는 막대기를 평미레라고 하는데, 이것이 한자로 ‘개(槪)’이다. 공통의 틀 속에 들어가지 않는 여분의 것은 제외하고, 공통의 것만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 이것이 바로 개념이다.

개념이란 획일화, 정형화, 정량화, 보편화된 생각의 덩어리이다. 스스로 개념에 굴복 당한 사람들은 권위에 약하고 사명감에 쉽게 포박당한다. 내가 ‘바라는 일’ 대신에 ‘바람직한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 대신에 ‘해야 할 일’을, 내가 ‘좋아하는 일’ 대신에 ‘좋은 일’을 하는 데 애쓴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불의도 참을 줄 아는 국민, 기업의 성공에 기여하기 위하여 입사를 원하는 취업준비생, 불철주야 ‘국민의 뜻’을 위하는 정치인, ‘미래’를 위하여 언제나 ‘하고 싶음’과 ‘해야 함’ 사이를 희석시키는 수많은 ‘너와 나’가 그들이다. 저자는 도대체 그 무거운 사명은 누가 준 것이냐고 묻는다. 왜 ‘좋아서’가 아니고 ‘위하여’냐고!

그리고 거듭거듭 묻는다.

그동안 바람직한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아니면 바라는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아니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

인문(人文), 인간이 그리는 무늬

문(文)이란 원래 무늬(紋)를 뜻한다고 한다. 인문이란, 인간의 무늬를 말한다. ‘인간의 결’ 또는 ‘인간의 동선’이라 부를 수 있다. 곧 인문학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와 인간의 동선을 알기 위함이다.

저자는 인문학의 우아한 풍경을 완상하지 않는다. 인문학은 고급한 이론이나 교양의 무늬가 아니라 생존과 행복을 위한 투쟁의 무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생존 근력을 키우는 실전 문제집이다.

‘노자’ 전공자답게 저자는 나와 우리, 이곳과 저곳, 지금과 미래, 명사와 동사, 예의바름과 버릇없음, 개념과 사건, 하고싶음과 해야함, 질문과 대답, 이성과 욕망, 보편과 개별 같은 대립쌍을 불러내 이열종대로 분류한다.

우리, 저곳, 미래, 명사, 예의바름, 개념, 해야함, 대답, 이성, 보편 같은 언어에 달라붙은 허위를 발라내고 과연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캐묻는다. 이곳과 지금, 동사, 버릇없음, 사건, 하고싶음, 질문, 욕망, 개별의 가치만이 ‘자신이 주인으로 사는 법’이라는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스치듯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난다.

- 우리(We)는 나를 가두는 우리(Cage)이다.

-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去彼取此).

- 멋대로 하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다(無爲而無不爲).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든지 ‘바람직한 일을 해야 한다’라는 당위의 굴레를 벗어나 아무런 기준이나 목적 없이 자발적으로 발휘하는 삶이 바로 무위의 삶이다. 누군가가 정한 기준이나 의무감에 얽매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 저 멀리 있으면서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론적인 이념과 결별하고 바로 여기 있는 구체적인 개별자들의 자발적인 생명력에 주목하라는 것.

옳고 그름이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지는 일이다. 대답에는 옳고 그름이 있지만 질문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질문 자체로 이미 완벽하다. ‘올바른’이라는 말이 창궐하는 요즘, 우리네 삶의 풍경에서 잡스러움을 빼내고 그려낸 진경산수의 맛이 그렇게 칼칼하고 시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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