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있습니다. 신사(辛巳)년의 아스라한 태양이 서산(西山)넘어 노을 속으로 기울었습니다. 또 한해가 저물고 있는 것입니다. 2001년 새해를 맞은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아쉬움과 함께 회한(悔恨)이 가슴에 솟구쳐옴을 금치 못합니다. 저마다 나름의 희망을 품고 그것을 기대하며 달려온 한해였기에 세모(歲暮)를 맞는 감회가 없을 수 없습니다.
분류(奔流)처럼 달려온 한해였습니다. 모두들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쫓기는 삶이 우리를 그렇게 내달리지 않을 수 없게 했던가 봅니다.
어느 해 라고 그렇지 않은 해가 있었으랴만 올 한해도 우리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휘몰아쳤던 그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은 국가 사회적으로,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의 삶을 짓눌렀고 그 고통은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인종을 강요했습니다.
되살아날 줄 모르는 경기, 정쟁으로 날이 새는 정치, 곳곳에 만연된 부패, 나라를 분열시키는 지역주의, 사회의 위화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가진 자 들의 이기심 은 삶에 지친 국민들을 더욱 슬프게 했고 하나같이 현실을 어둡게 했습니다.
2001년도 앞으로 20여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덩그렇게 벽에 걸린 마지막 한 장의 캘린더가 초라하기만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들 삶의 모습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한번 뒤를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쫓기는 삶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한해였기에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거울에 비춰봐야 되겠습니다.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잘한 것은 무엇이고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겸허히 반성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는 나의 이기심을 위해 남의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실없는 말 몇 마디로 하여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눈을 젖게 하지는 않았는지? 아혼 아홉 석을 갖고도 그것이 모자라 가난뱅이의 한 가마를 뺏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봐야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물음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요.
이제 곧 도시의 음식점들은 한해를 보내는 망년회로 왁자지껄 밤이 깊어질 것입니다. 누구나 한해의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을 한잔의 술잔에 담아 떠나보내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런다고 잊혀 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중국의 옛글에 西山日暮 重任途遠(서산일모 중임도원)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해는 서산에 지는데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일 터입니다. 지친 나그네의 어둡고 무거운 심경 을 잘 표현한 명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구야말로 오늘 우리 사회구성원들 누구나 가 갖고 있는 소회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에는 유토피아처럼 그렇게 나라를 가꾸고 사는 국민들도 많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 그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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