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사회 읽기

Artist 2창수

▲ Bansky, opening the apartheid wall in palestine.

20세기 이후 세상 어느 곳에선가 매일 전쟁이 진행 중이다. 특히 한국은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1950년부터 전쟁이 진행 중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전쟁 중인 나라에서 불안해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신기하게 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보기엔 중동처럼 테러가 빈번한 나라가 더 불안하다. 20세기 이전에도 강대국은 꾸준히 약소국을 각기 다른 명분으로 모든 것을 빼앗았다. 그렇게 빼앗기고 있는 줄도 모르는 체 강대국 논리에 휘말려 국제 정치라는 명분으로 더 약한 국민권리를 힘으로 빼앗아 강대국에 갖다 바치는 국가와 정치인들이 아직도 주위에 있다.

프랑스에서 테러가 발생하였다. 중동에서 발생하던 테러와 달리 유럽의 중심도시 중 하나인 파리 시내 여러 곳에서 발생한 테러는 더욱 충격을 주었다. 고향을 떠나는 수백만의 난민, 일상생활에서 당하는 테러는 분명 인류평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고, 평화를 위한 행동을 스스로 해야 한다.

▲ banksy-soldiers-of-peace
▲ tesco

뱅크시는 거리에 낙서를 하는 작가다. 작가는 거리에 낙서를 하지만 스스로 기득권에 대한 거부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미술로 표현한다. 그리는 실력이 빠르지 못해 미리 구멍을 뚫은 초안을 벽에 붙이고 스프레이로 분사하여 빨리 그림을 그리고 도망친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유럽도 벽에 하는 낙서는 불법이다. 그럼에도 이 불법표현, 낙서작가가 왜 의미 있는 작가로 대우를 받는 것 일까?

미술은 그간 특권층의 전유물이며 미술품의 값비싼 가격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를 나누어 놓는 훌륭한 경계선이 되었다. 뱅크시는 이러한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는 미술을 거부하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미술을 기부한(?) 것이다. 특권층만 누리는 미술을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술이 갖는 재산가치에 대한 저항과 같이 사회통념에 대한 저항을 하였다. ‘opening the apartheid wall in palestine’ 작품은 팔레스타인 난민 아이들을 위한 뱅크시의 작품이다. 거대한 콘크리트의 벽을 통해 속박되어진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미술로 전달하려 했다. 이 장벽은 이스라엘이 미국과 영국의 힘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팔레스타인들의 경계를 맘대로 정해놓은 것으로 물자와 여러 가지를 단절시켜 팔레스타인 삶에 어려움을 주는 폭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장벽으로 이스라엘은 스스로 더 불안한 이스라엘을 만들었을 것이다. 벽은 안전의 방법이 아니라 밖의 세상에 대한 불안함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 한다. 뱅크시는 이스라엘의 폭력을 희망의 벽화로 항의 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벽화처럼 유럽의 도시 곳곳에도 대형 슈퍼마켓에 열광하는 어린 대중들, 전쟁 반대의 이미지를 그려 놓았다.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함에 익숙해지고 순응하는 대중에게 자극을 제공하여 더 살기 좋은 사회를 스스로 이해하고 바꾸기를 원하고, 행동하는 거리의 작가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