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골 원주민 커피점 1호 ‘하늘다방’, 그들이 엮은 감동의 사랑이야기
점주 김상윤, 거리의 아티스트 림민, 온갖문제연구실 권은숙, JBL 대표 이준배

▲ 21일 수암골 윗자락에 문을 연 커피점 하늘다방. 골목길 안쪽 2평 남짓한 공간에 마련됐으며 원주민이 문을 연 커피점 1호다. /사진=육성준 기자
▲ 하늘다방을 알리는 연탄 문패. /사진=육성준 기자


처마 밑 제비집처럼 비탈길 꼭대기에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가가호호 모여 사는 수암골. 벽화마을로, 제빵왕 김탁구로 유명세를 타더니 지금은 하루 수백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마을은 유명세를 더해갔지만 원주민들의 삶은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거대한 상업 브랜드의 네온사인의 밝기만 높아지고 넓이는 커져갔다. 그럴수록 수암골은 더 왜소해졌다.

지난 21일 수암골에 두 평 남짓한 커피점이 문을 열었다. 커피점의 이름은 ‘하늘다방’. 수암골 에서도 제일 위쪽 골목길 안쪽에 있어 쉽사리 눈에 띄지도 않는다.

문을 연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하늘다방’은 벌써 화제를 몰고 있다. 화려한 개업 행사도 없었지만 개장 이틀 동안 100여명 이상이 다녀갔다. 수암골을 찾은 탐방객들은 하늘다방 앞 연탄설치작품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작품 중 탐방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깨진 연탄. 이 작품은 ‘부서지고 깨어져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이다.

이 곳은 상업자본이 아닌 수암골 원주민이 처음으로 연 제1호 커피점이다. ‘하늘다방’에는 장애를 가진 한 여인과 거리의 아티스트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이 녹아있다. 그러나 이들 연인의 사랑보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더 큰 사랑이 있었다. 하늘다방 점주 김상윤, 거리의 아티스트 림민, 온갖문제연구실 권은숙, JBL 이준배 대표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하늘다방의 대표. 그는 지체3급의 장애인이자 오랜기간 활동한 장애인권활동가이다. /사진=육성준 기자

하늘다방 ‘마담’ 김상윤

하늘다방 점주는 청주여성의전화 상담실장을 지냈던 김상윤(39)씨. 사람들은 유달리 작은 체구를 가진 그의 시민단체활동보다 충북여성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했던 기억을 더 강렬하게 가지고 있다.

그는 이곳 수암골에서 30여년을 살았다. 이정도면 원조 토박이인 셈이다. 그는 말한다. “수암골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곳 너른 공터에 저녁이 되면 주민들과 노인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누구는 아이스크림을 가져오기도 하고 누구는 과일을 가져오기도 했다. 윗집 아저씨는 막걸리를 가져오고 나는 커피믹스를 타서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수암골 사람들은 그가 커피를 타올라치면 이곳을 ‘하늘다방’이라고 불렀다. 지금 이 곳은 ‘오래된 골목길’ 표지판과 벤치가 자리잡고 있지만...

김상윤 하늘다방 점주는 지체장애 3급 척추장애인이다. 아버지는 지체장애 2급. 그의 부모는 괴산에서 살았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 나무를 해야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지게를 질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다. 겨울철이면 하루에도 9차례나 나뭇짐을 졌던 그의 어머니. 몇 해 전부터 상윤 씨의 어머니는 하반신 다리에 마비가 와 움직일 수 없다.

상윤 씨에게 인생의 전부였던 어머니.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심사를 받아 요양보호를 받을 수도 있지만 어머니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오늘도 정겨운 이웃들이 찾아온다. 칼국수집 아영이네 아줌마가 김장 김치를 들고 왔다. 다리가 아픈 동현이 아저씨를 대신해 아주머니가 꽃다발을 건넸다. 종수 아저씨는 들기름, 도토리묵, 만두, 시래기를 수시로 갖다 주신다.

장애를 가진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상윤씨는 수입이 필요했다. 어머니 곁을 지키면서 세 가족이 먹을 반찬값이라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수암골 현 거주지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여는 것. 미래건축사사무소의 도움으로 커피점 공사 견적을 뽑았다. 이렇게 나온 최소한의 공사금액은 350만원.

350만원은 누군가에게는 큰 돈이 아니겠지만 상윤 씨에게는 넘을수 없는 벽이었다. 이때 상윤 씨의 친구가 나섰다. 자칭 온갖문제연구실 권은숙(47) 대표. 권 대표는 상윤 씨의 친구이전에 여성장애인 인권운동 활동가이기도 했다. 충북여성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과 더불어 십여 년 간 장애인권운동에 매진했다. 권은숙 대표는 (주)JBL 이준배 대표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서 이 대표에게 “2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 장애인권활동가인 권은숙 씨는 현재 ‘온갖문제연구실’을 자임하고 있다. 하늘다방이 문을 열수 있도록 JBL이준배 대표에게 편지를 보냈다./사진=육성준 기자
▲ 이준배 JBL 대표. JBL은 반도체설비부품 정밀가공과 각종 산업제품을 제조하는 충북의 유망 중소기업이다.

응답한 JBL 이준배 대표… 3분만에 ‘OK'

(주)JBL 이준배(47) 대표. 그의 이름 앞에는 ‘고졸신화’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도 사회의 주류는 아니었다.

이 대표는 1996년 충남기계공고 2학년 재학 중 지역 기능경기대회 은메달, 88년 전국대회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기계제도 부문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이 대표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금성계전(현 LS산전)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10년간 근무했다. 이때 화폐식별기, 티켓 발권기, 무정전전원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이 대표는 1999년 종자돈 300만원으로 제품개발을 원하는 기업들에게 설계를 대신해주는 기업형 연구소 형태인 ㈜JBL을 설립했다. JBL은 현재 반도체설비부품 정밀가공과 각종 산업제품을 제조하는 충북의 유망 중소기업이다.

또 지난해 6월 부터는 공유경제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업화에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 플랫폼인 ‘아이빌트세종’을 설립해 젊은 기업인들을 지원하는 일도 한다.

이준배 대표는 권은숙씨를 만났다. 권 대표에 따르면 이 대표는 3분 만에 “테이크아웃 커피점 공사에 필요한 350만원을 지원해 달라”는 그녀의 제안을 수용했다.

키 작은 상윤씨에게 유난히 높았던 350만원이라는 거대한 벽은 이준배라는 담쟁이 넝쿨을 타고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350만원은 시작에 불과했다. 막상 공사가 시작되니 이런 저런 난관에 부딪혔다.

인허가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공사를 해야 했고 공사비는 눈덩이처럼 커져 1500만원을 넘었다. 처음 제안보다 금액이 늘었지만 이준배 대표는 하늘다방을 여는데 필요한 공사비 전액을 책임지기로 했다.

이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오히려 내가 감동받았다. 지켜보는 것 만으로 즐거웠다”며 겸손해 했다.

하늘다방에 도움을 준 분들은 이 대표 뿐만이 아니었다. 춤추는북까페 바리스타인 윤태석 씨. 사람들은 그를 커피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 커피를 마실 줄만 알았던 상윤 씨에게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전해주었다. 몸이 불편한 상윤 씨를 위해 수암골로 와 모든 것을 내주었다. 미래건축사 사무소는 설계부터 인허가까지 4개월동안 혼신의 노력을 보탰다.

▲ 림민 작가는 수암골 천사벽화를 제작했으며 다 쓰고 탄 연탄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 설치하는 거리의 아티스트로 유명하다./사진=육성준 기자

“3000개의 성탄 트리”

수암골을 찾은 탐방객들은 팔봉제과 부터 골목길 모든 구석구석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셔터를 누르는 곳이 수암골 제일 윗동네 천사벽화 앞이다.

4년 전 이곳 수암골에 낯선 이방인이 나타났다. 이방인은 몇 번 나타나길 반복하더니 어느새 붓을 들고 벽화를 그렸다. 이방인의 정체는 림민(38). 거리의 아티스트이자 수암골 천사 벽화의 작가로 김상윤 하늘다방 점주의 연인이다.

그는 서울생활을 오래했다. 서울에서 그가 누울 수 있었던 공간은 봉천동 달동네. 달동네의 풍경은 그에게 큰 위안이었다. 그는 오랜 여정 끝에 아버지가 있던 청주로 왔다. 텔레비젼에서 우연히 접한 수암골. 그는 무작정 수암골로 달려왔다.

처음 붓을 잡고 그렸던 벽화가 수암골 천사 벽화다. “부서지고 깨져도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는 현재 연탄 작품을 전문으로 하는 거리의 아티스트다. 자신을 태워 모든 것을 내준 연탄위에 다시 생명을 입히고 메시지를 씌운다.

현재 그는 가난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 때 돈을 보탤 수 없었다. 하지만 주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연대를 보았다.

림민 작가는 이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에 응답하기로 했다. 자신을 활활 태우고 부서지고 깨진 연탄이 희망의 성탄트리로 다시 태어나 수암골과 청주를 환하게 밝히게 하는 것. 3000개의 축복을 선물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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