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창고에 있다 구 국정원 창고로 옮겨져
반민특위에 체포돼 60일간 구속수사받은 친일파

 청주 3·1공원에 가면 민족대표 6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정춘수 목사의 동상 자리에는 빈 좌대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96년 2월 8일 시민들은 정목사의 동상에 일장기를 두르고 목에 밧줄을 건 채 끌어내렸다. 친일행적에 대한 단죄의 결과였다. 당시 충북지역사회민주단체연대회의는 범시민 서명작업과 공청회, 청원서 제출 등을 통해 청주시에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청주시와 충북도가 서로 떠넘기기를 계속하자 이 날 모인 시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동상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물론 동상은 산산조각났다. 80년 8월 15일 충북도가 건립한 민족대표 동상 중 한 개를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쓰러뜨린 일은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정목사 동상 철거 장면은 전국뉴스에도 등장, 세간의 이목의 집중시켰다.

   
 정목사의 동상 철거는 치밀하지 않은 공적조사가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는가를 보여줬다. 동상을 건립한 충북도에서는 정목사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한 것이다. 건립 당시 충북도지사였던 김종호 전 국회부의장은 “우리는 민족대표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새로운 민족사를 창조해 나가기 위하여 우리 고장 출신 여섯분의 동상을 이곳에 모셨다”는 내용의 준공기를 내걸었다.

 정춘수 목사는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았으나 이후 걸어온 길은 친일파의 전형이다. 그는 일제의 비호아래 조선감리교 제4대 감독을 지냈고, 각 교구장에게 ‘황군위문 및 철물헌납 건’이라는 공문을 보내 철문과 철책은 물론 교회종을 헌납해 성전 완수에 협력할 것을 요구했는가 하면 교단상임위원회를 열어 교회를 통폐합시키고 나머지를 팔아 전투기인 ‘애국기’를 헌납하자고 결의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또 서울 상동교회 예배당에 황도문화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교역자들을 모아 일본정신과 문화를 주입시키는 데도 앞장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돼 60일간 구속수사를 받고 정부가 독립유공자들에게 내리는 각종 서훈도 받지 못했다.
 현재 정목사 동상의 잔해는 청주시청 창고에서 오랫동안 잠을 자다가 얼마전에 사직1동 구 국정원 창고로 옮겨갔다.

 시 관계자는 “마땅히 보관할 데가 없어 국정원 창고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목사의 친일행적을 적은 안내판을 빈 좌대에 붙여 놓으면 누군가 와서 계속 떼어 놓는다는 그는 동상 잔해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일각에서는 친일행적도 역사의 한 부분이므로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줘야 한다며 동상 잔해를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보관하고 있는 시에서는 아무 계획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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