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달전 우암상가 붕괴, 임기중 충주호 유람선 사고

22일 오전 0시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서거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김영삼(88) 전 대통령은 충북과 깊은 인연이 있다.

우리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금융실명제 등 굵직굵직한 그의 정책은 청주 청남대에서 마지막 산고(産苦)를 겪었다. 청주 우암상가 붕괴 참사는 김 전 대통령 재임 중 첫 대형 사고였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1993년 2~1998년 2월) 정국이 꼬일 때마다 청남대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 초기 금융실명제 발표를 앞두고 청남대에 머물면서 마지막 정리작업을 했다.

대대적인 사정을 발표하기 전에도 김 전 대통령은 청남대에 있었다. 4000억원의 비자금 발언이 나오면서 정국이 흔들릴 때도,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을 앞두고도 청남대에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청남대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란 청와대 발표가 나오면 "이번에는 또 뭐냐"며 바짝 긴장하기 일쑤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부터 김해 등 4곳에서 운영된 대통령 별장 중 나머지 3곳을 모두 폐쇄할 만큼 청남대를 아꼈다.

청남대뿐 아니라 일선 현장도 자주 찾았다. 1993년 취임 첫해부터 1996년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매년 충북을 방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4월 충무공 탄신 기념 다례식이 열린 충남 아산 현충사를 방문한 뒤 당시 청원군 중소기업체 광임기계를 찾아 "광림처럼 기술혁신에 노력하는 중소기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광임기계의 모기업인 광림그룹이 2015년 1월 11일 부도 처리된 뒤 해체됐다.

1994년 2월15일에도 당시 청원군 남일초교와 충북전자를 들러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같은 날 충북도청을 순시하기도 했다.

1995년 4월15일에는 한국도자기를, 1996년 9월23일엔 오창 미곡처리장을 방문했다.

충북에 관한 아픈 기억도 있다. 김 전 대통령 취임 한 달 전인 1993년 1월 7일 청주시 우암동 우암상가 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진화 작업 중 상가 내부에서 누출된 LP가스가 폭발, 건물이 삽시간에 무너지면 서 주민 29명이 사망하고 4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무리한 설계와 부실시공이 낳은 참사로 밝혀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1년 10개월이 지난 뒤인 1994년 10월24일 충주에서 유람선 사고가 났다. 29명이 사망했고 1명이 실종됐다.

YS 임기 중 참사로 기록된 대형사고 중 2건이 충북에서 발생했다.

1987년 '3김'이 함께 출마한 13대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후보로 나서 충북에서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노태우(민주정의당) 후보는 46.89%, 김 전 대통령은 28.23%의 지지를 얻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충북 최고 득표율을 차지했다. 민주자유당 후보로 나서 38.26%를 득표했다. 김대중(민주당) 26.04%, 정주영(통일국민당) 23.87%, 박찬종(신정당) 9.35% 등을 물리치고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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