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육성준 사진부장

▲ 육성준 사진부장

일을 하다 가슴 뿌듯한 일이 몇 가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아끼던 옛 사진의 주인공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더구나 그 사진이 여러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면 말이다.

지난 2002년 여름 청주시 수동, 지금의 수암골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현재 카페촌이 둘러싸인 곳, 미로 같은 골목길 계단을 오르다가 등목하는 노부부를 만났다. 할머니는 우물을 퍼 올리고 할아버지는 등에 그 물에 끼얹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정겨워보이던지 묻지도 않고 카메라를 들이댔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13년 뒤 현재, 그곳은 어떻게 변했을지 짐작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찾았다. 산등성이 깎아 만든 우람한 커피숍 사이로 작은 집 한 채가 보였다. 그 사이에 숨은 작은 계단은 분명 그때 길과 같았고 주변 집들이 바뀌어서 카페들로 변했을 뿐 성한 곳 하나도 없이 그대로였다. 우물도 보였다. 확실히 그때 그 집이었다. 확신에 찬 마음에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는 계셨고 할아버지는 안 계셨다. 당시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기억하셨고 반겼다. 기억은 되살아났는데 그때의 추억은 없어졌다. 마을은 사라졌고 사람들도 떠났다.

집에서 나가라는 법원의 독촉장이 보였다. 40년 동안 산 터는 할머니의 소유가 아니고 집도 무허가 건물이다. 할머니는 “방 한 칸 살 돈은 주며 나가라고 하든지, 돈 한 푼 못 준다니…” 라며 애써 태연한 척 웃는다.

할머니는 치매로 집을 나간 지 7년이 다 된 할아버지가 돌아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가 독촉장을 받고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후죽순 지어진 커피숍 사이에서 한동안 잊어버렸던 추억의 노부부 집은 이렇게 아픈 사연을 안고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추천하는 수암골 ‘야경’이 끝도 없이 불타오르는 ‘야망’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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