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김윤희 충북문협 편집부장

▲ 김윤희 충북문협 편집부장

누긋이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는 성북동의 길상사는 그 어느 때보다 고즈넉하다. 누가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 했는가. 길상사의 가을은 완숙한 여인의 향기가 물씬 묻어난다. 시인 백석과 3년간의 애틋한 사랑을 가슴에 묻고, 60여년 세월 동안 그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다간 여인의 애달픔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절이면서도 절집의 분위가가 느껴지지 않는다. 정문 하나를 제외하면 경내 그 어느 곳에서도 절에서 흔히 보던 단청은 볼 수가 없다. 자연 그대로 하나의 작은 동산에 들어 있는 느낌이다. 느티나무 낙엽이 깔려 있는 뜰과 주황빛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농익어가는 모습이 곱다. 자잘한 들꽃 사이에 자라나고 있는 초록의 꽃 무릇 잎, 새빨간 꽃은 이미 지고 없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꽃 무릇 사이 오솔길을 걸으면서 백석을 사랑한 그녀를 생각해 본다.

열여섯에 기생이 된 진향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시인 백석, 그들의 사랑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했고, 남북 분단으로 인해 끝내 다시 볼 수 없는 연인, 상사화로 머물러 있다.

재색을 겸비한 진향은 이곳에 우리나라 3대 요정 중의 하나인 대원각을 차려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거부가 되었지만 영원한 백석의 연인이었다. 그런 그녀를 감화시킨 것은 법정 스님의 수필 한 편 <무소유>이다.

<무소유>의 깨달음으로 인해 대지 7000여 평과 40여 채의 건물 등, 당시 1000억 원대가 넘는 대원각 전 재산을 법정 스님께 시주를 결심한다. 사양하는 스님을 10년간 설득 끝에 송광사 말사로 절을 세우게 된다. 이듬해인 1996년 북에서 백석이 타계하고, 3년 후 여든셋의 그녀도 백석의 뒤를 따라 그의 곁으로 갔다. 유골은 길상사 뜰에 뿌려져 무덤조차 없다. 그 많은 재산을 미련 없이 내놓으면서 그녀는 ‘1000억대 재산이 백석의 시(詩) 한 줄만 못하다’ 했다니….

2010년 법정 스님도 그들의 뒤를 이어 입적하였다. 한때 요정의 전각은 아미타 부처를 봉안한 극락전이 되고, 주요 인사들이 비밀리 드나들었던 별채는 이제 스님들의 처소가 돼 있다. 요정의 여인과 스님, 극명하게 대비되는 삶이 잇대어 있는 현장을 본다. 스산한 바람결에 낙엽 몇이 휘돌다 고요히 머문다.

법정 스님이 공부하던 진영각은 단촐한 유품과 서책, 영정을 모신 자그마한 기념관으로, 잠시 스님의 뜻을 접할 수 있다. 그 옆 담장 아래 ‘법정 스님 유골 모신 곳’ 나무로 된 표지판과 장난감 같은 부도가 손바닥만 하게 자리하고 있다. 꽃 무릇 몇 포기가 푸르게 올라와 있고, 보랏빛 용담초가 조용한 미소로 옆을 지키고 있을 뿐 눈에 쉽게 띄지도 않는다.

무소유! 더 말해 무엇 하랴. 백석의 연인과 법정스님의 향내가 은은한 길상사에서 비움으로 인해 넉넉해지는 가을에 흠뻑 젖으며, 길상사에서 던지는 가을의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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