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차를 몰고 서울로 가다가 농민들이 탄 버스 수 백대가 저속운전으로 고속도로를 메우고 정체를 일으키는 바람에 혼이 났습니다.
추곡가인하 등 정부의 농촌정책을 항의하기 위해 전국에서 서울로 향하던 농민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비장함이 가득했는데 그 모습은 오늘 우리 농촌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가슴이 아팠습니다.
과천의 정부청사 앞 광장에서 열린 농민대회는 각지에서 모인 1만2천 여명의 농민 들이 '전국 450만 농민은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다'고 피를 토하듯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쌀이 모자라 걱정을 해야지 쌀이 남아, 쌀값이 싸서 걱정이라니 '즐거운 비명'이라고 해야할지, 딱히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 우리네 농촌의 현실이 아닌가싶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미명아래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 10분의 1도 안 되는 싼값의 쌀이 밀려들어오고 국민들의 쌀 소비는 줄어들기만 하니 농민들의 허망함과 분노가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아니라 어느 정부인들 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을까요.
그래도 옛날 농촌은 나라의 희망이었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요, 농사는 천하의 근본으로 농사짓는 일이 자랑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요순시대처럼 격양가(擊壤歌)는 부르지 못했을지언정 열심히 일하며 자연에 순응하고 하늘에 감사하며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오늘처럼 잘 살지는 못했을지라도 농민들의 피울음도 없었고 집단을 이뤄 시위를 벌이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쌀이 무엇입니까. 쌀 몇 되 박에 눈물을 흘리고 쌀밥 한번 실컷 먹고 죽고 싶다 던 게 지난 1천년 우리 민족의 소원 이 아니었습니까. 쌀밥이야말로 민족의 한 이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1995년 세상을 떠난 북한의 김일성 주석조차 '인민들의 첫 번째 목표는 쌀밥'이라고 신년사에서 말했을 만큼 쌀은 민족의 신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밥알 한 두 알을 방바닥에 흘리면 혼이 나고 그것이 아까워 다시 주워먹던 귀한 쌀. 그런데 오늘 그 쌀이 남아돌아 걱정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북녘 땅에는 쌀이 모자라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린다고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제때에 끼니를 거르는 독거(獨居)노인 부랑인 노숙자 소년소녀가장 등 극빈자가 전국에 300만이라고 합니다. 점심을 굶는 초중고생도 1만5천명이라던가요.
농촌에는 쌀이 남아 걱정이고 도시의 빈민들은 쌀이 없어 걱정이니 이 사회적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옛말이 있습니다. 쌀 농사가 망하면 농촌이 망하고 농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 다 고요. 그럼 이 말은 과거에만 해당되고 오늘에는 해당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역시 그 말은 진리입니다. 농촌이 망하고 잘된 나라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온 국민이 다함께 농민들의 성난 외침, 한숨소리를 들어야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되겠습니다. 고통은 함께 하면 반으로 준다고 하지요. 오늘 우리가 새겨야할 지혜는 바로 이것이 아닐 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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