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放浪)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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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放浪)의 마음
  • 충청리뷰
  • 승인 2015.11.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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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 읽기

방랑(放浪)의 마음
오상순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

바다를 마음에 불러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오도다.
망망한 푸른 해원(海原) -
마음 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의 향기
코에 서리도다.

- ‘동명(東明)’ 18호 (1923)

<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1920년대 초기에 이토록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자유시를 썼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처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의식 속에 잠재해있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게 됩니다. 더구나 시인이 처한 현실이 고통스러운 식민지 상황이라면, 자유와 평화가 공존하는 안정된 세계에 대한 열망은 더욱 크다 하겠지요.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이야말로 당시 시인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불안과 동요의 현실이며, 보금자리 치고 싶은 세계에 정착할 수 없는 다분히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 되겠습니다.

이 시의 화자가 동경하고 있는 ‘바다’는 시인의 내면의식 속에 잠재된 염원의 세계이며, 영혼의 안식이 보장되는 정주의 공간이 되지요. 그러므로 ‘흐름’이라는 혼란스러운 고통과 탐색의 과정을 거쳐, ‘흐름’의 영혼이 갈망하는 그리움의 세계 즉 시인이 안주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바다’에 이르고자하는 현실 초극의 갈망을 노래하고 있는 시입니다. 이 시인이 말년에 귀의하게 되는 불교적 사유로 해석한다면, ‘흐름’이라는 다분히 세속적인 번뇌와 고통의 세계로부터 ‘바다’로 상징되는 물심일여(物心一如),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내적 합일의 경지에 대한 동경을 노래한 시가 되겠지요.

공초 오상순은 하루 200 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골초로도 유명했지요. 지금의 장충동에서 큰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아버지가 후처를 얻는데 충격을 받아 가출하여 19세에 일본으로 건너가지요. 그곳에서 동지사대 종교철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한때 교회 전도사로 성서나 철학서를 끼고 다니는 단정한 인텔리였지요. 그 후 ‘폐허’에 참가하여 시와 평론을 발표하고 중앙불교학원 교원으로 취임하면서 불교에 심취하게 됩니다. 준수한 청년시절에는 일본 고급 관리의 딸 그리고 영국 선교사의 딸과 두 차례 플라토닉 러브 사건도 벌리고, 또 탑골승방 여승과의 스캔들도 치르지만, 1926년 동래 범어사에 입산 후 수행자의 길을 가지요. 말년에는 다시 선방을 나와 일명 ‘청동시대(靑銅時代)’로 불리는 다방문학시대를 거쳐 1963년 적십자 병원에서 입적하기까지, 일생을 그의 법명 ‘선운(禪雲)’처럼 아무런 혈연이나 사재를 남기지 않고 표표히 유랑하던 심신을 데리고 공(空)의 세계로 초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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