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도대체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더는 떨어질 데가 없을 줄 알았는데 노동 조건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무력감이 스멀스멀 온 몸을 감싼다. 정부가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노동개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교묘하게 이간질하는 책략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동안 일부 정규직 노조가 보여준 이기적 행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비정규직 채용을 묵인하고, 유해·위험 작업으로 비정규직을 내몰았으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여 이들을 사실상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았다.

게다가 보수 언론은 정규직 노조를 ‘귀족노조’로 매도하고 아들·딸에게 채용을 대물림한다며 흑색선전을 일삼았다. 그러니 비정규직 노동자가 보기에는 임금과 여러 노동 조건이 훨씬 나은 정규직이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한편, 정부가 밀어붙이는 임금피크제는 법 논리로도 맞지 않고 청년 고용 창출과도 별 상관이 없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볼 때, 임금피크제는 자신에게 해당 사항이 없다.

마찬가지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열풍처럼 진행된 통상임금 소송도 비정규직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러니 정규직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이나 임금피크제 저지에 앞장서는 모습이 비정규직에게는 오히려 자괴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차별을 해소하는 데에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고, 이에 대한 반대 주장도 있다. 정규직이 양보해도 비정규직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2015년 현재 30대 기업이 투자나 배당을 하지 않고 쌓아 둔 사내 유보금이 71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사내 유보금은 손대지 않은 채,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하여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논리는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이 양보하고 베푸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과 ‘연대’를 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돈을 들여 함께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때로는 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비정규직에게 내어 놓는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정부가 추진하는 이번 노동개악이 관철된다면 쉽게 해고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일 테니 말이다.

진정한 노동개혁을 하기에도 갈 길이 바쁘다. 현재의 법과 제도 아래에서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무척 많다. 특수 고용 노동자와 ‘무늬만 프리랜서’ 그리고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노동관계법령을 전면 적용해야 하고,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자의적인 법 적용을 처벌해야 한다.

아울러 거의 사문화된 부당노동행위를 정상화하여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노동권 침해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관계법령과 구조 자체를 올바르게 바꾸려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개악에 포함된 일반해고 요건 완화, 파견 업종 확대,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등은, 정규직을 없애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만큼 노동자의 힘이 약해진 현실이 투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고용 불안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각개전투하라는 정부의 노동개악 시도를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지옥을 맛보기 전에 상상을 뛰어넘는 ‘연대’가 절박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