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백년대계/ 엄경출 충북교육발전소 사무국장

연애하는 학생을 CCTV로 적발해 교내 수상에서 제외시키는 충북 B고, 고3 학생이 책을 빌린 기록이 있으면 체벌하는 울산 H고, 남학생부터 급식실을 이용하게 하는 서울 Y중.

서울의 S고등학교는 학교 자습실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돼 있습니다. 대화를 하다 선생님에게 걸리면 벌점 3점이 부여되고 이렇게 벌점이 쌓이면 자습실 이용이 금지됩니다.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시나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2015년 현재,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모습입니다.

‘인권친화적 학교 + 너머운동본부’라는 청소년인권단체가 10월에 진행한 “불량 학칙 공모전”에 들어온 생생한 이야기입니다.

나라에 헌법이 있듯이 학교에는 학칙이 있습니다. 학칙은 학교의 운영 전반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학칙에는 세부규정을 두고 있는데 학생들이 지켜야할 규정을 ‘학생생활규정’ 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위의 소위 불량학칙은 대부분 ‘학생생활규정’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법 성격인 학칙은 큰 테두리만 정하고, 시행령인 학생생활규정에서 구체적인 지침들이 꼼꼼히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생활규정은 말 그대로 학생들이 지켜야할 학교생활에 대한 약속입니다. 약속 지키기를 배우는 것은 학교에서 해야 할 아주 중요한 교육내용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내용도 모르고, 또 일방적으로 정해진 약속을 그냥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 된 일입니다.

현재 학생생활규정이 그런 모습입니다. 학생들은 학생생활규정이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런데도 그 규정을 학생들의 생활 속에 들이대고 지킬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벌점으로 혼내는 게 현재 학교의 모습입니다.

내용을 알지 못하거나, 강요된 약속은 약속이 아닙니다. 내용을 함께 상의하고, 합의하는 속에서 약속해야 그 약속은 힘이 생깁니다. 그래야 당사자들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키지 않았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기꺼이 치를 수 있습니다.

현재의 학생생활규정은 학생들이 함께 한 약속이 아닙니다. 충북 10여개의 중,고등학교를 살펴보니 학칙과 학생생활규정 개정을 2~3년전에 한 학교가 많습니다. 더 오랜기간 개정되지 않은 학교도 있습니다. 재학생들과 약속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학생생활규정은 매년 개정해야 제대로 된 의미를 갖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한해 동안 학교생활하면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 투표로 정하면 됩니다. 학생들은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으면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는 것이며, 또한 약속 지키기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학생생활규정’ 개정 축제를 제안합니다.

매년 2학기 어느 기간을 정해서 충북의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학생생활규정을 들여다보고, 토론해서 개정하는 축제를 벌여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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