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백년대계/ 이동갑 충북교육발전소 정책전문위원

▲ 퇴계 이황

말은 글과 다르다. 말보다 글이 좋은 사람이 있고, 말은 잘 하지만 글은 서툰 사람도 있다. 글은 참 좋은데 말이 어눌하거나 유창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말과 글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이는 보통사람들에게는 힘든 경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처럼 말과 글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크게 기쁜 일이다.

필자는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 말과 글이 일치하도록 애쓰고 앎과 실천이 동일한 삶을 열망한다. 날마다 말이 글을 앞서가지 않도록 경계한다. 지난 글에서 ‘말은 인격이다’라고 언명하였지만 글 역시 그 사람의 됨됨이 그 자체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처럼 그 사람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말과 글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고, 많이 써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러니 언제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방법 일기 쓰기이다. 일기장에 시도 쓰고 수필도 쓰고 편지로 써도 된다. 요즘은 이 일기장이 SNS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홈페이지나 까페 혹은 블러그에 쓸 수도 있지만 간편하게 페이스북이나 밴드에 자신의 일상을 기록해도 좋다.

하지만 가끔씩 충분히 정제되지 못하고 퇴고 되지 못한 글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글이 좀 더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생략된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좋은 소재를 가지고 쓴 글인데 표현 방법이나 기본적인 어법과 여운, 감동이 없는 글이 너무 많아 공해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SNS로 인한 글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저 마다 작가이자 1인 매체의 주인공이 된 시대이다. 자신의 생각을 거침 없이 표현하고 소개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 댓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논쟁을 하기도 하고 생각을 주고 받는다. 예전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편지를 통해 주고 받는 사단칠정 논쟁은 실시간 생방송으로 진화하였다. 하지만 먹향 가득한 글을 읽으며 또 읽다가, 먹을 갈아 답 글을 쓰다가 또 고치고 고쳐 전하는 이의 등짐 속에 보내던 그 글들과 오늘날 우리의 글들은 차이가 많다. 두 선비가 주고 받은 편지가 400백년을 지나 오늘날 일부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우리가 날마다 쓴 글들은 실수를 바로 잡거나 잊어 버릴 권리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글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평생을 따라다니는 일을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성장함에 따라 생각도 말도 글도 함께 진화하지만 예전의 생각과 글들로 지금의 나를 심판하는 것의 부당함을 항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충북교육발전소에서는 수년 째 ‘어르신 자서전 쓰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근 여고에서 선생님의 도움으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실시하였다. 세 학생이 한 조가 되어 기획하고, 인터뷰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이 한 권의 자서전으로 엮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주변의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한 권의 역사책을 지닌 소중한 어른신이고 자산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은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았다. 손주들은 조부모와 자신의 부모와 가족의 역사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이를 정리하는 학생들도 어르신을 존중(존경-孝)하는 일이 책에서만 배울 수 없음을 경험하였다. 격대교육이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가정에서 환갑이 되면 환갑잔치 대신 ‘자서전 쓰기 운동’이 일어나면 좋겠다. 예순이 너무 이르면 일흔이어도 좋다. 손자, 손녀가 중학생 무렵이면 가장 좋을 듯하다. 내년이면 모든 중학교에 의무적으로 확대될 자유학기제에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할아버지, 할머니 자서전 쓰기를 제안한다. 충북지역에서 먼저 시작하자. 무엇보다 가정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자서전 쓰기를 계기로 가족들이 서로의 지나간 상처를 보듬고 다시 화목하게 재탄생하는 사회운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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