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조광복 음성노동인권센터 노무사

절룩거리면서 찾아온 그이는 몸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물을 두어 번 들이켜고 나서도 성이 안 찼는지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요? 이럴 수가 있어요?”를 반복했다. 그러다 한 번씩 언성을 높였다. 꼭 시비를 거는 사람 같았다.

“글쎄 내 며느리가 좀 모자라는 아인데 손목이 잘린 것도 못 볼 일인데 휴업급여를 부정 수급했다면서 내놓으라는 거요. 이럴 수가 있어요.”

그에겐 장성한 아들이 있다. 아들은 정신지체 3급이다. 뒤늦게 여자를 알고서는 결혼시켜 달라고 떼를 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혼인을 시켜 같이 살게 했다는데 건축일 나가서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정신이 이상하게 돼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한다. 그 아들이 남기고 간 며느리가 조 모 씨다. 역시 정신지체 3급이다. 이 며느리가 오갈 곳이 없으니 방 하나 구해주고 보살펴주는 것이다.

열 구렁의 물이 한 구렁으로 모인다고, 어찌 액운은 이 집으로 다 모여드는가! 조 씨는 2년 전 용역 즉, 인력업체를 통해 취업한 공장에서 취업 첫날 손목을 통째로 기계한테 먹히고 말았다. 시아버지와 함께 온 조 씨의 한쪽 팔이 휑했다. 치료를 받으면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휴업급여를 받았다. 그런데 두 달 정도 되는 그 기간 동안 음성군 내 공공기관의 관계자가 사정을 딱하게 봐 잠깐씩 와서 시간제로 일하라고 하고, 한 달에 20여만 원 정도를 두 차례 준 일이 있다. 이 일이 황당한 사건으로 이어질 줄이야. 근로복지공단이 한참 후에야 58일 동안 지급한 휴업급여 240여만 원이 부정으로 수급한 돈이니 그 전액을 내놓으라고 하니, 시아버지인 그이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고 있다.

근로복지공단도 참 야박하다. 조금만 조 씨의 입장에서 본다면 의도적으로 휴업급여를 부정수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조금이라도 피해 노동자를 보호할 입장에 선다면 합법적으로도 조 씨를 보호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산재보상보험법 부분휴업급여제도가 있다. 치료받는 도중이라도 시간제로 일을 나갈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시간제로 받은 급여를 제하고 법이 정한 금액을 부분휴업급여로 지급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근로복지공단을 방문하여 이 제도를 설명하고 휴업급여의 일부 금액을 보전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다행히 조 씨는 빼앗기게 될 휴업급여의 상당액을 보전 받게 됐다.

하지만 조 씨에게 일을 알선해 준 인력업체도, 일을 시킨 회사도 없어져버린 그녀의 팔목엔 관심이 없다. 병원에 입원시킬 때 빼고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뒤늦게라도 이 회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하면 처벌을 받게 할 수 있겠지만 조 씨와 시아버지도 많이 지쳤다.

나는 곧 이 일을 잊어버렸다. 두 달쯤 지났을 무렵 조 씨에게서 “늦었지만 고맙다고.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하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또 잊어버릴 것이다. 인력업체에게도, 회사에게도, 내게도 그녀는 잠시 스쳐간 바람일 것이다. 정신지체인 그녀도 휑한 팔이 문득문득 서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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