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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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의 아름다움
  • 이상철 시민기자
  • 승인 2004.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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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는 티벳 승려들이 수행을 목적으로 만드는 예술품이다.

차크푸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색모래로 그림 조각을 하는 것인데, 모래와 차크푸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는다. 장시간 동안 매우 정교한 작업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만다라의 문양 하나 하나가 수행의 시작부터 종료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하고 있어 그것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충분히 명상이며 수행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만다라를 모두 완성하고 난 이후이다. 만다라는 완성된 이후에 보관되어지지 않는다. 승려들은 만다라 제작이 끝나면 장식된 모래를 모두 모아 항아리에 넣고 강가에 흘려보낸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 만다라를 ‘완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제작의 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한 이후에 그것을 파괴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과정 모두가 이루어져야만, 그것을 만다라의 ‘진정한 완성’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티벳 승려들은 만다라를 만든 이후에 계속해서 보관하는 것은 자연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그들은 만다라를 만들고 그때 사용된 모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련의 과정이 ‘만다라의 아름다움’이지, 완성된 작품이 아름다움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이 때문에 그들은 “ 만다라는 떠나갔어도 그것이 주는 교훈은 영원히 남아있다. ” 라고 믿는 것이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결과만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는 우리의 잘못은 수많은 가치를 잃게 한다. 최선을 다한 사람보다는 최고를 차지한 사람이 전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단적인 예는 교육 현장에서 나타난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과외선생이고 학원선생이고를 갈아 치우고 교육 방법-교육 방법이라 하기엔 깊이마저 얕은-을 바꿔대는 일, 지필고사 성적순으로 비교과 과정의 기회를 부여하는 일, 한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미래,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철학을 제공하지 못하고 암기와 계산만 난무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것, 따라서 학생들이 학문 자체와 세상의 움직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대학 입시에 얽매여 입학 이후 진정한 사회의 지식인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이것은 ‘내공’없는 , 고수 아닌 하수들만을 길러 낸다. 사람이 실패하더라도 어디에서나 다시 일어서 새로운 앞날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과정을 중요시 하는 사회 풍토다.

얼굴 생김새, 몸매, 재력은 겉으로 보이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며 , 특히 아름다움은 어떠한 절대적 기준도 부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에도 우리는 이런 겉치레에 걸려들고 만다. 성형수술, 명품 열풍, 웰빙 열풍, 다이어트 열풍 등등. 모든 사람과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보려하지 않고 시각적인 효과만을 쫓는 탓에 현대 사회에서는 본래의 목적과 의도를 잃어버린 ,부작용이란 이름의 사건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을 생각하자면 머리가 아파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어린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

에리히 프롬은 그의 유명한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소유와 존재는 상반되는 관계로서 소유가 커지게 되면 존재 가치가 줄어들고 소유를 줄이게 되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소유하는 것보다 소유하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는 일-중요한 가치를 얻는다는 측면에서-이라는 흥미로운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만족으로 인해 살아남을 수 있다. 자기만족은 물질적 소유로는 결코 얻어낼 수 없다.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쫓자면 끝이 없다. 결국 내가 보다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것, 높은 정신을 소유하는 것이며 그것은 어떤 것을 소유하지 않고 오히려 나누어줌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은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해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진 아름다움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보내지 않고 계속 두고 보려 한다면 집착할 수밖에 없다.

망가질까 노심초사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만물의 조화를 추구하는 행위인 동시에 계속적으로 보다 훌륭한 아름다움을 고찰하게 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아까 말했듯 돌려보냄으로서 나만이 아름다움을 소유하지 않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티벳 승려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만다라를 장식한 모래를 다시 모아 모두 강에 흘려보냄으로서 가능한 한 넓은 곳까지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퍼져나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결과물보다는 과정 자체를 중요시 하는 태도,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보다는 세상만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일의 소중함, 완성된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려보냄으로서 얻는 무소유의 가치를 만다라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만다라는 단순한 승려들의 수행 수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예술작품‘이다. 모든 예술작품이 미술관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강물 사이로 떠돌아다니는, 보이진 않지만 살아있는 예술작품 만다라를 찾게 된다면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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