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나도 하위 관리자만 처벌…회사대표는 다 빠져나가
지게차사고 에버코스 대표 구속…‘악화된 시민여론’ 작용한 듯

▲ 지난 7월 29일 지게차 사망사고를 일으킨 (주)에버코스 대표가 결국 구속됐다. 사진은 지난 9월 민주노총충북본부가 에버코스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는 장면

출동한 119 차량을 돌려보내 소속 직원을 사망케 한 소위 ‘지게차 사망사건’을 일으킨 (주)에버코스 대표이사가 결국 구속됐다. 그동안 안전관리 미흡으로 7~8명의 사망자가 발생해도 구속자가 없었던 관행에 비추어 보면 이번 구속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를 구속하게 된 배경에는 노동부의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노동부가 산업재해는 노동자의 과실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본질은 범죄행위라는 경각심을 주기위해 강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문제도 동시에 대두됐다.

그동안 대규모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직접 책임은 공장장이나 그 하위관리자가 지고 사업체의 대표에게는 형식상의 책임만 물었다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 대표자가 산재 사망사고로 구속된 것은 “21세기 들어 처음 있는 일”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9월 30일 대전고용노동청 청주지청(지청장 엄주천‧이하 노동부청주지청)은 (주)에버코스 지게차 사고와 관련하여 J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사건이 발생한 7월 29일 이후 꼭 64일만의 일이다.

노동부청주지청은 구속된 J 대표이사는 “사업장내에서 지게차 등 하역운반기계 작업 시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지 않았고, 또한 지게차에 시야가 가리도록 화물을 적재한 상태에서 작업지휘자를 배치하지 않고 위험장소에 근로자를 출입토록 하여 지게차에 치여 근로자를 사망케 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사고 발생 당시 재해자 구호를 위하여 119 구조차량이 사고현장에 거의 도착하였음에도 신고를 취소하여 돌아가라고 하는 등 재해자 구호조치를 매우 소홀히 하였으며,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임에도 상습적으로 산업재해를 은폐해 구속이 불가피 했다”고 밝혔다.

 

'산업재해는 범죄' 경각심

J대표의 구속은 노동부청주지청에서 영장을 청구해 이뤄졌다. 노동계 관계자는 “산재 사망사고로 관련자가 구속된 경우가 그동안 거의 없었다. 특히 대표가 구속된 것은 청주에선 십 수년 만의 일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노동부가 이번 사건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엄주천 노동부청주지청장은 J 씨 구속이후에 “사업주의 법 준수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재해예방 조치를 소홀히 하여 사망사고를 유발하는 사업장 관련자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의법 조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회사 대표자는 구속 됐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았다. 첫째는 유족이 요구하고 있는 진상규명이다. 사망한 지게차 운전사 고 이성태의 아버지 이종호 씨는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우리 아들이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 끝까지 책임 소재를 밝히겠다.

우리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이어 “상황이 바뀔 때마다 말도 바뀐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단순 찰과상인줄 알았다고 말했다”며 “누구의 지시로 119 차량을 돌려보냈는지 왜 병원에 바로 데려가지 않았는지 다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고인의 매형 민경욱 씨는 “대표가 구속됐지만 유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상 포괄적인 책임만으로 영장이 청구된 것이다. 직접적으로 누가 119차량을 돌려보내게 했는지 최종 지시자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에버코스 지게차 사망사고에 대한 수사는 노동부와 경찰이 병행해 수사하고 있다. 민 씨의 말대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위반에 대해서는 노동부청주지청이 수사를 맡고 있고 나머지 형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경찰수사는 사고발생 70일이 되는 현재도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실체적 진실이 잘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족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사업주는 솜방망이 처벌관행

또 다른 문제는 산업재해 사건에서 사업주에 대한 봐주기용 솜방망이 처벌 관행의 문제다. 에버코스 J대표가 “산재사망 사고 십 수 년 만에 처음 구속”이라는 오명을 받았지만 이는 역으로 십 수년간 대표자가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부청주지청에 따르면 관내에서 2014년에 총 25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고 올해는 벌써 2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중에서 사고로 관련자가 구속된 경우는 없다.

지난 2012년 8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은 청주공담 모 사업장 폭발사고 역시 하청회사 법인에 벌금 3000만원, 현장소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원청 대표는 무혐의로 판명됐다.

전국적인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40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의 책임자로 지목된 원청회사는 벌금 2000만원형을 선고 받았다. 이 회사 대표에 대해서도 벌금 2000만원 선고에 그쳤다.

산재 뿐만이 아니라 안전 사고에 대해서도 비슷했다. 올 2월 10명이 사망하고 128명이 부상을 입은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에서도 원청 대표는 처벌에서 제외됐고 중간 관리자들만 처벌을 받았지만 사안에 비해 약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선고된 형에 대해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원청 현장소장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지붕 패널을 부적절하게 시공한 하청업체 대표도 징역 1년 6개월, 부실자재 구매를 지시한 또 다른 하청업체 전무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원청 대표이사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노동계에서는 이런 솜방망이 처벌과 사업주에 대한 면피를 해주는 관행이 산업현장에서 안전불감증을 키우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청주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구속이 십 수년 만에 처음이라는 것은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된다. 오히려 그동안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일 뿐”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고를 일으킨 회사의 대표도 처벌하는 쪽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길 희망 한다”고 밝혔다.

 

 

법원, “노동자에겐 가혹, 사업주에겐 관대” 이중 잣대

단순업무방해는 구속…600여명 16억3000만원 임금체불은 기각

 

회사대표에게는 관대하고 노동자에게는 가혹한 법원의 이중잣대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노동부 청주지청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모 건설업체 대표 K씨와 Y씨에 대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노동부청주지청에 따르면 K씨와 Y씨는 오창과 죽동의 아파트 골조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 대표와 이사로 노동자 639명의 2개월치 임금 16억300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영장이 기각되자 고용노동부측은 이에 대해 "실질심사에서 K씨와 Y씨 모두 조사에 임하고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이 고려된 것 같다"면서도 "수백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체불한 악덕 기업주가 구속되지 않은 점은 유감"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반면 노조나 노동자에 대한 처벌은 강했다. 지난 2007년에는 시중가 30~40만원의 회사 기물인 파레트를 몰래 고물상에 판 모 회사 노조간부가 구속되기도 했다. 법원은 이뿐만 아니라 잔업거부나 사소한 몸싸움만으로도 기소된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강한 처벌을 내렸다. 노동계 관자는 “사장님 무죄, 노조 유죄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며 이번 판결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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