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여아 상습폭행 암매장 사건<현장 르포>

 8살바기 여자 어린이를 상습폭행해 숨지게 한 부모와 이웃 주민들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엽기적 사건이 발생했다. 충주경찰서는 지난 13일 자신의 어린 딸을 상습폭행해 숨지게 하고 사체를 암매장한 정모씨(36)와 부인 손모씨(29)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또한 정씨 부부와 같은 원룸빌라에 살면서 폭행에 가담한 이웃주민 배모(52 여) 신모(46 여) 이모(32 여)도 살인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아울러 사체를 암매장을 도와준 최모씨(47)를 사체유기혐의로 구속하고 또다른 최모씨(30)는 부인이 구속되면서 자녀양육을 감안, 법원이 영장을 기각시켰다.

 서울 연쇄살인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또다른 엽기적 사건으로 등장한 여아 살해사건은 이웃주민들까지 전격 구속되면서 사건경위에 관심이 집중됐다. 부인 손씨가 전처 소생의 자식들을 상습폭행한 것은 ‘계모학대’로 규정할 수 있지만, 옆집 주민들까지 폭행에 가담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같은 의문을 품고 취재진은 사건이 벌어진 충주시 이류면 원룸 빌라촌을 직접 찾아갔다. 인근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살해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알아본다.

 숨진 여자 어린이는 올해 8살된 정다희 양으로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한채 거의 집에서 갇혀 지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사체 암매장후 3개월이 지나도록 인근 주민들이 큰 의구심을 갖지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특히 사건이 벌어진 원룸빌라는 동네 한 구석에 위치한데다 거주자들의 신분과 생활여건이 대부분 불안정해 이웃간의 소통이 제한적이었다.

 지난 2001년 문제의 원룸빌라로 이사온 정 손씨 부부는 두사람 모두 사기 등의 혐의로 지명수배중인 처지였다. 따라서 현지에 주민등록조차 하지 못했고 이로인해 전처 소생인 장남 정군(12살)과 다희양(8살)도 초등학교에 보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아이들 문제 때문에 싸움이 잦았고 결국 부인 손씨가 배다른 형제인 차녀(3살)와 막내(1살)를 낳았다는 것.

=수배중 부부, 주민등록신고 못해=
 정씨는 특정한 직업도 없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이번 사건으로 함께 구속된 여성들은 빌라의 아래윗층에 사는 이웃이었다. 이들은 정식부부가 아닌 동거커플도 있었지만 서로간에 형님, 동생, 형부로 호칭할 만큼 밀접한 사이로 지냈다는 것. 부인 손씨는 장남 정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손버릇이 나빠 쫓겨나다시피 했고 할 수없이 휴학시키고 집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둘러댔다.

 손씨는 아이들을 집안에 머물게 한 채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시켰다. 정군의 경우 동네 심부름을 위해 이따끔 집밖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숨진 다희 양은 가까운 이웃들도 2년 9개월동안 너댓번 얼굴을 접했을 뿐이라는 것. 마을 주민 Q씨는 “그 집에 가보면 식사도 부부가 작은 애들만 데리고 먹었다. 전처 소생 남매는 따로 밥상을 차려주든지, 대충 굶기다시피 하니까, 꼴이 말이 아니었다. 특히 작은 애(다희)는 얼굴도 푸석푸석하고 빠짝 말라서 무슨 병이 있는줄 알았다. 집에서도 그 애는 항상 걸레나 빗자루를 들고 있길래, 애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엉뚱한 생각하지 않고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남매는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이 심했고 다희양은 같은 빌라에 사는 여성들에게도 학대받기 시작했다. 부인 손씨가 ‘애들이 손버릇이 나쁘다. 버릇 좀 고쳐달라’며 회초리를 주문했고 구속된 여성들은 고무호스와 주먹으로 상습폭행을 했다는 것. 경찰조사 결과 한겨울에 욕실에 가둔채 찬물을 끼얹는등 지속적인 신체적 위해를 가한 것으로 드러났고 나이어린 다희양의 몸은 극도로 쇠잔해 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관계자는 “2년 9개월동안 88회 폭행을 가했다고 발표된 부분은 이들 부부와 빌라 주민들이 대체로 한달 몇 번 정도 때렸다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추산한 것이다. 다희양이 4월 18일 사망한 것도 그날 폭행 때문에 사망했다기 보다는 쇠약해진 상태에서 병원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사체 발굴 현장에서 나온 과자봉지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살아 생전에 과자 하나 편하게 먹어봤겠나 싶은게, 너무도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공범에 돈갈취하다 경찰제보돼=
 경찰은 지난 12일 청주 모여관에서 도피중이던 정 손씨 부부를 긴급체포했고 범행일체를 자백받아 제천시 백운면 야산에서 사체 발굴작업을 벌였다. 다릿재 부근에서 발견된 사체 곁에는 아버지 정씨가 함께 묻은 과자 3봉지가 있었다는 것. 이들의 범행은 함께 구속된 모씨의 딸이 경찰에 제보하면서 드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부인 손씨는 사기 혐의로 수배중이던 폭행공범 A씨의 약점을 내세워 은근히 협박하며 ‘내 오빠가 형사다, 잘 처리되도록 도와주겠다’며 700만원의 돈을 뜯어냈다는 것.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차일피일됐고 7월말 ‘경기도 하남에서 큰 공사를 하는 친척이 있는데, 같이 가면 일을 맡도록 해주겠다’며 A씨와 동거인에게 동반이사를 권유했다는 것. 결국 야반도주하듯 새벽녘에 양쪽 집의 짐을 모두 옮겨 일단 이사짐센터 창고에 보관했다. 하지만 며칠뒤 정 손씨 부부가 자신들의 짐만 찾아간 채 A씨의 짐은 그대로 맡겨둔 것으로 드러났고 사건전모를 전해들은 A씨의 딸이 ‘죽은 아이를 신고도 하지 않고 묻은 것은 큰 잘못’이라며 경찰에 제보하게 됐다는 것.

 이밖에 손씨는 함께 구속된 장애인 모씨의 명의를 빌려 신용카드와 은행계좌를 텄고 통장에 1억2000만원이 입금된 내역을 확인시켜 주며 인근 주민들에게 사채를 빌려 쓰기도 했다는 것. 명의를 빌려준 모씨도 450만원을 받지 못해 주위에 하소연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증언이다. 이에대해 주민 W씨는 “그 사람들 이사올 때 이불 베개도 하나 없어서 빌려줬고, 애 낳고 나서 분유값이 없다고 돈 몇만원을 빌리러 다녔다. 그런 사람들이 1억원짜리 통장을 내놓고 돈 좀 빌려달라는데, 믿음이 가질 않아 모르척 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건에 연루된 빌라 여성들은 정 손씨 부부와 묘한 악연으로 얽혀들어 아동학대에서 살인에 이르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부모구속으로 남겨진 3남매의 운명은

 정 손 부부의 구속은 장남(12살), 차녀(3살), 막내(1살)등 3남매의 긴급구호라는 시급한 문제를 남겼다. 경찰은 정씨와 아이들의 주민등록 주소가 청주시 수곡2동으로 기재된 것을 확인하고 해당 주소지에 살고있는 정씨의 어머니 이모씨(62)에게 일단 3남매를 맡겼다. 하지만 이씨도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기초생활수급자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보육을 담당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

 이에대해 수곡2동사무소는 “우선 올해 태어난 젖먹이 막내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아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보살피고 있다. 장남은 동생들과 떨어져 있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고 있는 상태다. 할머니의 건강상태가 워낙 안좋아 도저히 두 아이를 키울 처지가 아니고, 적합한 보육시설을 찾아 3남매를 함께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결과 할머니 이씨는 미혼으로 홀로 살면서 구속된 정씨를 키워준 계모였다. 정씨가 가출하면서 전화연락만 오가는 처지가 됐고 수배중이다보니 자신과 아이들 주소지를 이씨에게 옮긴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계모의 손에서 성장한 정씨가 자신의 딸을 계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방조하는 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한편 사건직후 청주 할머니집에 맡겨진 장남 정군은 배다른 동생들에게 각별한 보호본능을 보여 관계자들을 숙연케 했다는 후문이다. 정군은 3살바기는 항상 손을 잡고, 막내는 직접 업고다닐 정도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는 것. 또한 동생들이 보호시설에 맡겨진다는 낌새를 챈 정군이 한참동안 3살바기 동생을 데리고 사라지는 바람에 주위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또한 숨진 다희 양과 정군의 생모가 아이들에게 간혹 전화연락을 했으나 사건직후 아직까지 연락두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경찰 관계자는 “죽은 아이나, 남겨진 아이들이나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이 없는지 주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사회구성원 모두가 부끄러운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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