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사람들/ 김동진 청주삼겹살 ‘함지락’ 대표

풍자만화로 유명한 박재동 화백의 그림이 청주 한가운데 떴다.

청주시 중앙동 청소년 광장 건물 벽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웃는 그림이 붙여져 있다. 유난히 귀가 크고 인중이 긴 추기경이 눈이 아예 감길 정도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다. 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그림을 보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배시시 새어 나온다. 청소년 광장에 있으니 청주 청소년들이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그림이다.

바로 옆에는 어느 노동자가 하루 일당으로 받은 돈을 엄숙하게 세는 모습의 그림이 있다. ‘가난함의 행복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돈 없음의 쓸쓸함을 얘기하는 식자는 없구나. 돈이 없으면 친구조차 만나기 힘들어지니 그 무력함과 비참함이여! 또한 알토란 같은 돈이 들어 왔을 때 그 남모르는 행복감이여!’라는 글귀가 들어 있는 그림이다. 애써 돈에 무관심한 척 겉으로 말하는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꼬집으며 동시에 정직한 돈의 의미를 보여주는 풍자만화다.

광장 건물 모퉁이에는 요즘 너무 형식적인 제사 풍속을 꼬집는 만화도 눈에 띈다. 제사상에 올라 있는 조기의 입을 빌어 조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절을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허례를 비판하고 있다.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중’이라는 말에서 실소를 참을 길이 없다.

청소년 광장 주변 중앙동 ‘차 없는 거리’ 골목에는 더욱 많은 만화가 붙여져 있다. 요즘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듯, 행인이 있을 때는 날씬하게 보이려고 숨을 참다가 지나가면 숨을 뱉어 배가 불룩 나오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다.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린 듯하다.

퇴근 길에 허름한 주점에 들러 직장생활의 애환을 토로하는 직장인들의 모습도 있고, 취업을 하지 못해 만면수심에 젖은 채 홀로 벤치에 앉아 있는 청년 백수도 보인다. 카드 명세서를 보며 월급을 받아도 카드 결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어느 직장인의 한숨도 그려져 있다. 또한 운 좋게도 떼돈을 벌었지만 마음 한쪽 구석은 공허하더라는 말을 자랑삼아 어려운 친구에게 하는 그림에선 졸부의 위선도 느낄 수 있다.

사회 풍자적이고 비판적인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환한 모습도 여러 곳에 더 보이며, 잇몸이 드러나고 두 눈이 감기도록 파안대소하는 어느 시골 총각의 모습도 보이고, 하루 열심히 장사를 하고 뿌듯해 하는 노점상의 모습도 있다. 서민들의 진솔한 일상과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곳곳에 보인다. 10편으로 구성된 스토리텔링 형 만화도 선을 보였다.

현재 중앙동 일대 골목골목에 붙여져 있는 박재동 만화는 줄잡아 80여 점.연말까지 130여 장의 만화가 설치될 예정이다. 성안길 같은 번화가는 제외하고 비교적 한산한 뒷골목에 집중적으로 부착되고 있다.

중앙동 골목의 만화거리 조성 프로젝트는 전 청주문화사랑모임 윤석위 대표의 남다른 노력의 결과다. 평소 박재동 화백과 친근하게 지내는 윤 전 대표가 도심 골목을 재미있는 공간으로 가꿔보고자 박 화백에게 만화기증을 부탁하면서 시작됐다. 중앙동 ‘차 없는 거리’ 조성사업으로 중심로가 말끔하게 개선된 데 비해 뒷골목은 여전히 지저분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만화를 기증받은 대신 만화를 인쇄하는 비용만 예산지원 받는 방식으로 청주 만화거리는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윤 전 대표는 이를 위해 올해 우선 130여 장의 만화를 부착하고 주민들과 시민들의 반응을 지켜본 뒤 내년도에 규모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서울 명동의 만화거리 못지않은 청주 만화거리가 탄생할지 조심스럽게 지켜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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