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속 세상/ 신중호 우진교통 운전기사

“음력 팔월 추석 이전에 조상의 묘에 자란 잡초를 베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풍속. 주로 백중 이후인 7월말부터 추석 이전에 이루어진다.” 사전에서 벌초의 정의를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바로 요즈음이 벌초 시기이다. 이 시기엔 시내버스의 풍경도 변화가 생긴다.

시골로 이동하는 버스에는 풀을 베는 예초기, 낫, 갈퀴, 삽 등등 묘를 손질하는데 필요한 연장들을 가지고 승차하는 손님들이 늘어난다. 그래서 부피가 큰 연장들로 인해 인상을 찌푸리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또 차량의 증가로 길은 밀리고 손님은 늘어나고 피로감이 두 배가 되는 때다.

벌초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의 손님 얼굴을 보면 땀에 절고 힘든 일 후에 마신 막걸리 한잔의 힘인지는 모르지만 얼굴이 불그스레 상기되어 있기도 하고 뭔지 모를 흐뭇함이 묻어난다. 아마도 작년 추석이후 장마 때 돌보지 못한 묘 풀도 베고 이곳저곳 손을 봐서 일 것이고, 모처럼 조상님을 찾아뵈어서 일 것이다.

오늘 라디오 방송에서 벌초를 하러 움직인 차량이 고속도로에 쏟아져 많은 정체를 이루었다고 나오더니 내 차에도 한 무리 벌초 객들이 승차를 했다. 신문지로 낫의 날 부분을 싸갖고 든 사람, 예초기 몸통을 맨 사람, 예초기 대를 든 사람 다양하게 들고 차에 오르며 “죄송합니다.”하고 인사를 한다.

“벌초들 다녀 오시나봐요?” “예 아이들이 내려와서 같이하니 올해는 금방 끝났어요!” 얼굴에 미소가 한 가득이다. “내년엔 저희들끼리 할 테니 쉬라네요! 하기는 나이가 들어서... 오늘 다 가르쳐 줬으니 잘 하겠지요 뭐!” 묻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것 보니 대견스러운 모양이다. “그럼요 젊은 사람들이 해야죠!”하며 맞장구를 쳐 줬다.

그런데 올해는 한 팀 말고는 더 이상 벌초 객을 만나지 못했다.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보니 바로 답이 나왔다. 차가 밀리지 않는가. 각자 승용차를 이용 하는 것이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커다란 연장을 들고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며 승, 하차를 하는 불편도 없고 묘 근처까지 가까이 갈 수 있고 이점이 많으니 당연 한 것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운행하는 우리에겐 연장을 들고 타는 손님이 없어 승, 하차도 빠르고 다른 승객에게 불편을 주지 않아 좋지만 차가 밀려 마찬가지다. 차라리 차가 안 밀리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오늘은 이렇게 넘어 갔지만 다음 주말엔 차례음식 장만 하는 인파와 맞물려 차가 더 밀릴 것이다. 작년엔 육거리 재래시장부터 청주대까지 한쪽 차선은 거의 서있다 시피 했다.

중간에 백화점에 선물구입하러 나온 인파까지 더해져서 그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겠지?’ 속으로 되새기며 추석이 지나갈 때까지는 마음을 비우고 여유롭게 운전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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