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를 두루 적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면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이라는 낯선 용어가 나옵니다. 분경 이란 글자풀이로는 바삐 뛴다는 의미이겠지만 여기서는 벼슬을 얻기 위해 권세 있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닌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엽관운동(獵官運動)을 일컫는 것입니다.
전 왕조인 고려 때도 벼슬을 얻기 위한 분경의 폐단이 없지 않았으나 법으로 제재한 일은 없었는데 조선조에 들어와 그것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자 드디어 법제화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친척이 아닌 자가 고관 집에 드나들며 승진 등의 청탁을 해 분경금지법을 위반하면 볼기 1백대를 때려 3천리 밖으로 귀양을 보낸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것을 일러 장일백류삼천리(杖一百流三千里)라 하였으니 당시의 공직사회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되고도 남는다 하겠습니다.
기초 및 광역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정치권의 실세 및 단체장들에게 줄서기가 시작됐다고 입방아들이 한창입니다. 대통령선거야 정권이 달린 것이니 줄서기에 따라 크게 한자리 할 수 있는 기회라서 보나마나 그렇다 하겠고 지방에서야 재선이 확실시되는 단체장들에게 줄을 대려는 공직자들이 은밀히 연줄을 찾아다니는 게 소문의 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기야 그게 어디 어제오늘의 일 이겠습니까. 지난날 관선시대에는 ‘좋은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단체장의 사병(私兵)이 되다시피 한 이들도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일부 간부 공직자의 부인들은 관사를 드나들며 가정부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는 낯뜨거운 소문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는 감도 아닌데 요직에만 계속 눌러 앉는다는 뒷말도 있었고 벼락승진을 한 사례도 비일비재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생존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회주의자, 출세주의자들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이 뒤로 엽관운동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와서 부쩍 무슨 무슨 게이트니 해 벌집을 쑤신 듯 세상 이 시끄러운 것도 실은 야당에 줄을 댄 공직자들의 ‘뒷거러때문임은 불문가지입니다.
힘을 가진 자 주변에 사람이 꼬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음식 있는 곳에 파리 날아들고 찌꺼기 있는 곳에 쥐들 모여드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한눈 팔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면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사회는 이나마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양식을 가지고 사는 삶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 어느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