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 예당기획 편집실장)

   

 상황 1.  열린우리당 신기남의장이 코너에 몰렸다. 선친이 일제시대때 헌병으로 복무했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절묘한 기회를 잡은 한나라당이 공격의 포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모르긴해도 모든 힘이 소진될만큼 한나라당은 연일 맹공을 퍼부을 것이며, 그만큼 신의장은 곤혹스러울 것이다. 과거사진상특위 구성에 만만찮은 암초를 만난 셈이다. 신의장도 사실을 시인했다. 하면서 선친의 문제 또한 과거사 진상 규명 대상이 될수 있다고 했다. 독립투사들과 유족들에게 사과도 했다. 옥에 티는 그러면서도 선친에 대한 업적을 말했다. 그건 그것일뿐 친일청산과는 별개다. 사족(蛇足)은 왜 달까?

 상황 2.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제의하고 있는 ‘과거사 진상규명 특위’ 구성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거부했다. “성공한 역사를 뒤엎으려는 의도”며 “야당과 그 지도자를 겨냥한 비열한 정치술수”라는 것이다. 덧붙여 마치 빠질수 없는 ‘양념’처럼 경제와 민생부터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하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수 없다는 요상스런 이야기가 인정되는 세상이니, 정의(正義)란게 무엇인지…

 상황 3. 한나라당 박근혜대표가 ‘정체성’을 들고 나왔다. 한마디로 현 정권을 인정할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정할수 없다는 기본 명제에 깔려 있는 논리의 근간에는 노무현 정권의 ‘좌파적 성향’에 대한 의심이 있다. 옛 말처럼 ‘뽈갱이’가 아닐까 걱정된다는 이야기다. 열린우리당은 ‘신색깔론’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세가지의 상황에 대해 역으로 정리해 보자. 정체성(正體性)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그놈이 진짜 어떤 놈이냐?”하는 물음이 바로 정체성을 찾는 접근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한나라당 박대표가 현 정권의 정체성을 문제삼고 나온데에는 그의 선친 전 박정희대통령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시대 중위 출신으로 친일 진상규명 대상이 돼버린 선친에 대한 의혹을 희석시키고 해방이후 이승만 정권때부터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정권까지 정권의 유지·재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연마해온 ‘색깔론 기술’을 차용해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는 의도도 엿보인다.

 하긴 친일진상규명에 대한 법안을 끝끝내 거부하다 헤질대로 헤진 누더기로 만들어 당시에는 그 계급을 단 친일인사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중령 이상의 계급으로 상향 조정해 큰 ‘선심’ 쓰듯 통과시켜 주었을땐 한시름 덜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던 것이 ‘소위’까지 확대돼 자신의 선친까지 포함됐으니 분통터질 일이요, 야당 지도자에 대한 ‘비열한 술수’가 아니냐는 반발이 일만도 하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인간 박정희’는 과거사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에 있어 하잘것 없는 깃털에 불과할 뿐이다. 해방이후 친일파들에 의해 재독점돼버린 권력으로 우리는 역사 청산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미미한 활동을 보였던 ‘반민특위’마저 ‘빨갱이’로 몰아 제거한 후 그들은 제 치부를 철저하게 은폐해왔다. ‘친일 진상 규명’을 이야기 하면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었다. 이미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정체성이 실종돼 버렸던 것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전범자와 부역자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철저하게 응징했던 서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이후 너무 오랜 시간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왔다. 그것이 독재의 권력, 쿠데타 군부 세력의 폭압적 권력의 칼날이 우리의 숨줄을 겨누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비겁함을 인정해야 한다. 너무도 멀리 돌아왔지만, 이제라도 역사를 바로세워야 한다.경제니 민생이니 다 좋은 말이다. 그것은 우리들 살갗에 여과없이 들이대는 한낮의 폭염이다.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우리나라의 정기를 바로세우는 일이 밀려서는 안된다. 정신없는 육신이 어디 제대로 된 육신인가. 용서없이는 화합 또한 이룰수 없다. 상생이란 화합에서 출발한다. 거꾸로 말하자. 숨겨왔던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용서를 구하라.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상생(相生)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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