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김윤희 충북문협 편집부장

▲ 김윤희 충북문협 편집부장

요즈음은 뒤집어쓰는 것이 대세인가보다.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보니 요란하게 복면을 한 여인이 열창을 하고 있다.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우선 형색부터가 독특하고 노래 또한 수준급이라 시선을 끌어 들이기에 충분했다. 알고 보니 일요일마다 진행되는 예능프로그램중의 하나였던 것을 이제야 보게 된 것이다.

노래 부르는 사람에 대해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오직 노래실력만을 평가를 하는 모양이다. 평가단 역시 전문인, 연예인, 시청자 일부가 참여하여 평가한 것을 종합 집계하여 점수가 나온다. 선입견이 없이 순수한 실력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신선했다.

다음날 오전에 집을 나서는데 복면을 한 여인과 실제 맞닥뜨렸다. 그녀에게서 안녕하시냐는 인사를 받았다. 아침운동을 다녀오는 듯한 복장을 하였는데 도무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어쩡정하게 마주 인사를 하려니 복면을 들춘다. 비로소 아는 얼굴이 드러났다. “난 또, 누군가 했네.” 반갑게 다시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리 환한 얼굴을 왜 복면을 하여 섬뜩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얼굴이 탈까봐 그러한 것이겠거니 짐작이 간다. 이해도 간다. 그러나 내가 드러난 채 가려진 상대방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못 된다. 가면이나 복면이 주는 이미지가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다 차치하고 보더라도 가면을 쓴 얼굴이 흉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감정 없는 로봇 같아 비켜가고 싶어진다. 다소 못생긴 얼굴이라도 감정이 살아있는 얼굴을 대하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람냄새가 스친다.

사람뿐만이 아니고 이제 식물들까지 복면에 나섰는가보다. 지나가는 길가의 밭 한 가장자리에 붉은 복면을 한 무리가 병정처럼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어떤 밭에는 푸른 복면을 한 병정이 연대도 넘게 서 있다.

길가 한 옆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살펴보았다. 아하, 양파자루를 뒤집어쓰고 있는 수수였다. 순간 피식 혼자 웃음이 터졌다. 수수팥단지, 수수부꾸미,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의 시골소년과 서울소녀가 비를 피하던 수숫단…. 어쩌다 우리의 아련한 추억이 깃든 수숫대가 이렇듯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던가. 콩 포기를 헤치고 들어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8월의 막바지 태양열에 이제 막 수수가 영글어 가기 시작하고 있다. 악착같이 달려드는 새떼들로부터 알곡을 지켜내기 위해 양파자루를 뒤집어쓰고 힘겹게 저를 지켜가는 수숫대를 보면 농부들의 애환이 그대로 읽힌다.

폭염 속에서 버젓한 알곡을 가꾸어 놓아도 중간 장사치들의 농간에 휘둘리기 일쑤이고, 값싼 외국산에 밀려 앉기도 한다. 복면가왕에서처럼 우리 농산물도 질적 평가가 순수하고 가치롭게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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