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 읽기

떠나가는 배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 ‘시문학’ 창간호 (1930. 3)

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1930년대 식민지 현실 속에서 한 젊은이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할 시입니다. 시인은 젊은 나이를 무기력하게 눈물로만 보낼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을 ‘떠나는 배’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앞대일 언덕’인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쫓겨 가는 마음’이기에 우울한 떠남일 수밖에 없지요. 오래 발붙이고 살아온 정든 땅과 눈에 익은 사람들을 돌아보지만, 바람이 훼방을 놓아 구름에 가리고 마네요. 결국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라는 결연한 의지도 그저 허망한 결심일 뿐, 좀처럼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 두 야’라고 띄어쓰기로 호흡을 느리게 한 것은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라는 구절과 연결되어, 차마 떠날 수 없어 망설이는 화자의 심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나라 잃은 민족의 비애와 한 젊은이의 좌절과 갈등 같은 것이 마음 아프게 다가섭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토를 타민족에게 점령당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전라도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박용철은 김영랑, 정지용등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계급주의 문학의 목적적 이념성에 반기를 들고 ‘시문학’, ‘문학’, ‘문예월간’ 등을 간행하면서 본연의 언어미학에 바탕을 둔 ‘순수시 운동’에 앞장섭니다. 그리고 박용철이 이들 문예지의 편집과 발행을 도맡아 하게 되지요. 그는 ‘시문학’, ‘해외문학’, ‘극예술연구회’등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시, 비평, 번역, 연극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칩니다. 대표 시 ‘떠나가는 배’,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외에도 국어교과서에 실린 명문 ‘시적 변용에 대하여’를 썼고, 입센의 ‘인형의 집’과 쉐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번역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35세에 결핵으로 요절할 때까지 각종 문예지의 발행 비용을 도맡아 왔고, ‘김영랑시집’, ‘정지용시집’도 간행해 주면서, 병으로 육체적 고통은 컸지만 부유한 재산을 바탕으로 문학과 연극 발전에 헌신하였던 것이지요.

전라도 광주시의 한 공원에는 동향의 두 시우인,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와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새긴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 든 사람이라면,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라고 이 시를 읊조리면서 울적한 청춘을 달래던 시절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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