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읍성을 중심으로 길, 건물흔적 남아 있어
골목길 프로젝트 통해 스토링텔링 시작해야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마케팅
1.대전·대구의 근대문화유산 활용
2.이탈리아 도시들의 활용 사례
3.오스트리아 도시들의 활용 사례
4.충북의 역사문화유산 되돌아보기
5.도시의 이야기, 어떻게 만들까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 시 담당자는 취재진들에게 구도심의 옛 지도와 현재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줬다. 과거의 건물들과 거리들이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수천년이 지나도 그래도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취재진들을 안내한 곳은 현재 카페 정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천 년 전 마굿간이었다. 구도심의 거리 곳곳에 있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을 지도를 그려가며 소개했고 자랑했다. 짤츠부르크 시에서 문화재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에바호디 씨는 “먼저 지역의 문화재 지도를 그리고 시민들에게 공표하라. 그 다음 이를 보존하고 활용하기에 힘쓰라”라고 조언했다.

▲ 동부지역문화탐방로는 전통문화부터 근대문화유산까지 5개 구간별로 정리돼 있는 문화유산지도다.

남석교, 유리 통해서라도 보여주자

 

이미 청주에도 지도는 그려져 있다. 이길환 청주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몇 년 전 동부지역 문화탐방로를 5구간에 걸쳐 그렸다. 전통문화부터 근대문화유산까지 코스별로 정리돼 있는 지도다. 하지만 용역 이후 이에 대한 활용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국장은 “육거리 시장 내 잠자고 있는 남석교를 일부 복원해 활용하면 도시의 그림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육거리 시장이 전통시장이라고 하지만 현대화된 시장과 다를 바 없다. 남석교 일부를 유리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해도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올 것이다. 육거리 시장에서 파는 물품이나 모습도 과거의 모습을 재현한다면 살아있는 민속촌이 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청주의 원도심 일대는 도심 경관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주의 근대화 과정이 그대로 남아있어 원도심 일대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이라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이는 중심에 청주읍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주읍성은 청주 도시 건축의 시작이자 원형이며 기준이다. 성곽은 없어졌지만 그 흔적은 가로망으로 현존하고 있고, 성안길을 비롯해 동서남북 4대문으로 이어지는 가로망, 동헌과 병영 및 사창 영역, 압각수, 영문, 철당간 등의 유구도 현존하고 있다. 민선 5기에서는 청주읍성 일부를 재현하기도 했다. 물론 읍성 안팎의 수많은 민가들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위치하고 있는 대지의 모양이라든가 골목길은 여전히 남아있다.

김태영 청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청주읍성은 도시공간구성 및 경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차지했다. 다른 도시와 달리 청주읍성의 흔적과 유물, 도시공간구조는 선친들의 삶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역사적인 지속성을 이을 수 있다. 역사문화 및 도시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라고 강조했다.

원도심 일대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문화동 우리 예능원과 청주대성고등학교 본관 외에도 충청북도 본관, 주성교육박물관(구 청주공립보통학교 강당), 대성여자중학교(구 청주대학교) 강당, 옛 충북 산업장려관, 충북지사 관사, 청주 동부배수지 제수변실이 있다.

이외에도 지정은 안 됐지만 생활상을 담은 근대문화유산이 많다. 북문로의 구 잠사건물, 예전 청주역 앞 대한통운의 전신인 옛 조선운송, 옛 연초제조창 그리고 도심 곳곳에 위치한 도시 한옥과 점포들이 있다.

변광섭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무국장은 “청주는 아직 근대문화유산이 특성화되지 못했다. 시민들과 함께 올 10월에 골목길 투어를 시작할 것이다. 전문가들과 함께 골목길을 걷고 난 뒤 오래된 한옥에서 파티도 열 것이다. 숨어있는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하고 한권의 책으로 엮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골목길을 특성화하는 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데 청주는 아직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도시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인구 15만명 이상이면 도시라고 보고 프랑스는 2000명이상이 살고 있으면 도시로 본다. 영국은 대성당이 있는 곳을 도시로 기준 삼았다.

사실 우리나라 도시들은 근대화, 도시화 과정에서 고유의 모습을 잃고 보편적인 모습을 띄게 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한국만의 독특한 고유한 특성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근대화 시기 지은 건물에 대한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옛 연초제조창을 두고 수차례 철거 계획이 나왔지만 지금은 철거보다는 보존 및 활용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이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60년대 청주, 경계에 선 시간

 

오늘날 청주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60년 대 전후로 보고 있다. 1960년대는 근대성과 현대성이 분리되는 시기다. 원도심은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성안동과 중앙동의 도심 경관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여전히 훌륭한 역사문화자원이다.

김 교수는 “청주는 읍성을 중심으로 농촌의 자연마을이 산재해왔다. 근대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격자형 도로망이 개설되고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새로운 도시공간 구조로 재편됐다. 마을의 연원을 추적해 보니 1913년도에 정리된 이 일대의 지적도를 통해 22개 마을이 구한말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면서 “22개 마을은 우암산 자락인 탑·대성동과 모충동에 주로 분포돼 있다. 통합 청주시가 도시 및 농촌지역의 활성화 계획을 세울 때 먼저 자연마을의 현황과 내력, 그리고 잠재적인 성격에 대한 연구부터 선행된 후 개발을 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도시의 정체성은 시간과 역사의 흐름으로 보여줄 수 있다. 1960년대 도시를 고찰하는 것은 현대도시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당시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70·80대인지라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청주의 기억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도시 공간구조인 길, 물길, 대지, 나무, 건축물 등의 물리적인 복원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된 가게, 사람에 대한 기억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 청주시는 지금 다양한 사업들이 전개되고 있다. 도시재생으로 또한 도시개발의 이름으로 사업이 전개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갖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문화예술인은 “청주시는 지금 어수선하다. 통합하면서 전체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제대로 된 도시재생 및 문화예술 사업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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