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끝에 얻어낸 일요일 의무휴일…수요일로 자발적 전환 ‘코앞’
2012년 롯데마트 입점 저지 때도 발전기금 5억원 받고 상생협약

2009년 7월 15일, 가경동 홈플러스 가경점 앞에는 청주지역 재래시장과 동네수퍼 영세상인 1000여명이 집결해 24시간 영업에 돌입한 홈플러스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가게 문을 닫고 나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철시집회’는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됐고, 청주시는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잠식에 가장 강하게 맞서는 도시로 이름을 알렸다. 시민운동으로 확대된 청주시의 대형마트 진출 반대운동은 타 지역 상인들에게도 모범사례로 인식되며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는 원동력이 됐다.

▲ 2009년 9월 홈플러스 가경점 앞에서 열린 철시집회. 이 집회를 계기로 청주시는 대형마트 반대운동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그렇게 얻어낸 것이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이다. 2012년 4월 1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이 발효됐고, 그때부터 둘째 넷째 일요일이 의무휴업일로 정해졌다. 그렇게 3년여를 시행해오던 일요일 의무휴업이 변경될 위기에 놓였다. 충격적인 것은 반대운동에 선봉에 섰던 영세상인단체들이 요일 변경에 동조했다는 점이다.

 

상인들 “의무휴일 실익 없다”

지난 1일 충북청주경실련은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등 청주지역 대형마트 7곳이 지난달 26일 청주시에 의무휴업일을 수요일로 바꿔달라는 의무휴업 변경요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관련 조례에 따르면 의무휴업은 매월 이틀로 공휴일 중에 지정하도록 돼 있지만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치면 공휴일이 아닌 날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들어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위원인 롯데마트 서청주지점장(배석만)이 이해당사자인 전통시장연합회와 충북청주수퍼마켓협동조합의 동의를 얻어 변경안을 제출한 것이다. 이렇듯 사전 조율을 통해 통과가 당연시 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와 관련해 경실련은 “청주시민들은 지역 중소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대형마트의 공격적인 영업 행태와 지역자본 유출을 우려하며 최소한의 대형마트 규제에 동의해 왔다”며 “따라서 롯데마트를 위시한 청주지역 대형마트 측이 요구한다고 해서, 일부 상인단체들이 합의했다고 해서 쉽게 변경될 수 없음을 밝힌다”고 말했다.

의무휴업은 시민운동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로 대형마트와 지역상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시민운동의 최종 목적이 단순히 영업제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단합을 촉구했다. 최윤정 경실련 사무처장은 “당시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매주 일요일 휴무와 영업시간 축소, SSM 진출 반대, 일정규모 이상의 마트 허가제 등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지킬 수 있는 더 강력한 것들이었다. 다만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등 당시의 분위기에서 최소한의 규제지만 그에 동의했던 것”이라며 “더 강화해나가야 하는 시점에서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충북청주경실련은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무휴업 변경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인과 대형마트 측은 의무휴업일을 변경하는 것을 전제로 새롭게 상생협약을 체결할 것으로 나타났다. 배석만 롯데마트 청주지점장은 “기존 상생협약은 단순한 봉사활동 등이 명시된 소극적 협약이었다면 이번에는 본사의 지원을 받아 제대로 된 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왕시 구리시 오산시 등 경기도권에서는 이미 여러 곳에서 이러한 상생협약을 체결했고, 위생점검 등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명색의 상생협약이니 대형마트도 이득이 있어야 하고 그 가운데 하나가 의무휴업일 변경”이라고 설명했다. 의무휴업일 변경을 얻어내는 대신 상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수요일-일요일 매출 20% 차이 나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위원인 정화용 청주시전통시장엽합회 총무는 사전 교감에 대해 “꾸준히 만나 간담회를 해왔다. 대형마트 측이 타 지역 사례를 이야기하기에 정하고 싶으면 요청하라고 했다”며 “일요일 휴무를 해보니까 전통시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없었다. 중간에서 SSM만 이익을 챙기더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에 대해 최윤정 경실련 사무처장은 “3년 세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느껴졌던 변화가 이제는 익숙해져 같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의무휴업일로 인해 그만큼 대형마트의 매출은 줄어들었고, 누군가의 매출로 이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혜택이 SSM으로 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위원인 이명훈 청주시전통시장연합회장은 “득실을 따져야 할 것 아니냐. 우리는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통해 일요일이나 수요일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 내렸다. 대형마트 측이 환경개선사업이나 장학사업 등 실질적인 지원을 이야기한 것도 사실이지만 협의회를 통해 합의를 거쳐야 결론날 일”이라고 말했다.

경실련은 “유통 재벌들이 의무휴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지자체장들과 허울 좋은 상생협약을 맺고 신규 입점 및 의무휴업 조정의 대가로 상생발전 기금 및 시설현대화 사업 지원을 약속한 사례들을 접한 바 있다”며 “자본의 논리로 진정한 의미의 ‘상생’을 저해하고 지역경제의 뿌리를 뒤흔드는 여하한 시도에 대해 흔들림 없이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당장의 금전적 유혹에 상인들이 흔들린 것이다. 2012년에도 대형마트는 같은 방법으로 상인들의 반발을 무마한 전례가 있다. 비하동 롯데아울렛과 롯데마트가 입점을 추진할 당시 청주시수퍼조합과 청주시전통시장연합회는 입점 반대 시위를 진행하다가 돌연 롯데마트와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입점을 용인했다. 당시 롯데마트는 두 단체가 반대운동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각각 2억 5000만원씩 총 5억원의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한편 지난해 9월 발표된 ‘2014년 유통업체연감’에 따르면 의무휴업이 시행된 이후인 2013년 대형마트의 일요일 매출은 전년대비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요일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월요일 12.7%, 화요일 12.3%, 수요일 11.2%, 목요일 12.8%, 금요일 14.3%, 토요일 21.3%, 일요일 15.4%로 나타나 쇼핑을 가장 많이 하는 요일은 토요일, 가장 적게 하는 날은 수요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엔날레 표 사고, 집행부 월급 더 가지고”

2012년 롯데마트가 준 발전기금 사용처 ‘허탈’

 

2012년 비하동 롯데마트 입점 저지운동을 펼치던 청주시전통시장연합회와 충북청주수퍼마켓협동조합은 그해 9월 롯데마트 측과 극적으로 타결했다. 롯데마트가 제안한 상생협약을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롯데마트는 소상공인 직원 자녀와 지역주민 우선 채용, 사회공헌활동 적극 참여 등을 약속했다. 이와 함께 롯데마트는 발전기금 5억원을 전달했다. 사실상 이 발전기금이 반대운동을 철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이 발전기금은 어떻게 사용됐을까. 5억원은 양 단체에 2억 5000만원씩 돌아갔다. “연합회에 상근직 월급도 줘야 하고 이래저래 지출할 곳이 많은데 청주시로부터 지원받는 돈은 전혀 없다. 사무실 운영비로 대부분 들어갔다. 그 돈으로 비엔날레 표 사서 기증도 하고…” 이명훈 청주시전통시장연합회장의 설명이다.

유근필 충북청주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조합운영에 사용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디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는 남은 것이 없다는 것과 그동안 조합 운영과 관련해 당시 상무로 근무하던 A씨를 검찰에 고발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상무의 월급이 크게(70%인상) 늘었고, 외부감사 결과 회계장부 또한 맞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5억원은 협회 등 집행부가 사용했고, 수퍼상인이나 시장상인에게 돌아간 것은 없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