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 터널 발파작업으로 주택 파손…다시 지려니 ‘불허’
피해주민 “멀쩡한 집 부숴놓고 나몰라라하면 어쩌나” 분통

20여년째 수동에 살고 있는 김태철 씨 가족은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터널을 뚫기 위해 집앞에서 발파작업이 진행됐고, 그 여파로 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청주시로부터 보상도 받았다. 이제 김 씨의 집은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김 씨는 부서진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당분간 머물 집도 구하고, 이삿짐도 싸 놓았다. 하지만 건축허가를 받으러 시청에 방문한 후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청주시가 고도제한 때문에 건축허가를 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20여년전 김 씨의 어머니가 이 곳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건설업을 하는 김 씨는 2004년 이곳에 2층집을 지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평생 살 생각으로 직접 지은 집은 김 씨에게 남다른 의미였다. 그러던 어느 날 터널을 뚫기 위한 발파공사가 시작됐고, 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언제 무너질지 몰라 하루 빨리 집을 비워야 하지만 다시 집을 짓겠다는 계획이 틀어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 우암산터널 등 도로개설공사가 진행 중인 수동의 주택가. 김태섭 씨의 집은 공사의 영향으로 균열이 생기는 등 수명이 다해 신축을 계획했지만 청주시가 고도제한을 이유로 건축허가를 불허해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쾅’ 발파작업, 하루에도 열댓 번

2010년 6월, 상당공원-명암로간 도로개설공사가 착공됐다. 용암2지구 조성으로 금천동·용암동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늘어난 교통수요를 분산시켜야 했다. 해당 도로는 상당공원과 충청북도교육과학연수원 뒤편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개설되면 용담동주민센터 앞 도로로 이어진다. 우암산을 걸치는 도로는 문화재 훼손 등 논란을 일으키며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변경 끝에 현재의 형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공사의 핵심은 우암산 자락을 통과하는 터널이다. 화강암반지대인 이곳에 터널을 뚫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발파작업이 진행돼야 한다. 문제는 폭약을 터트리는 발파작업은 진동을 동반하고 인근 주택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청주시는 2012년 시범발파를 통해 주택이 입는 충격여부를 확인했다. 도로와 연접한 김태철 씨 집을 포함해 7개 주택이 영향을 받았다. 청주시는 이들 주택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했다. 김 씨 또한 2억 50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김 씨는 “2004년 집을 지었을 때, 당시 돈으로 2억원 이상 들었다. 비슷한 수준으로 보상비가 나와 발파작업이 끝나면 다시 집을 질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김씨 가족은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발파작업이 한창일 때는 하루에도 열댓 번씩 폭약을 터트렸다. 집 안에 있으면 진동이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집은 점점 부서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1층보다 2층이 더 큰 충격을 입었다. 2층 곳곳에 균열이 가 있었다.

이제 터널은 다 뚫었다. 터널과 이어지는 도로만 건설하면 공사는 마무리된다. 청주시는 2016년 초 도로를 개통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해당 도로가 김씨의 집 바로 앞으로 지나가고, 김 씨가 집을 비워야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데 고도제한 때문에 집을 질 수 없게 되자 김 씨가 집을 비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김 씨는 “우선 살 집도 5개월치 월세를 미리 내고 구했다. 공사 공정에 맞춰 집을 비워주려고 짐도 다 싸 놓았다. 우리가 집을 비우면 그사이 도로를 다 닦고, 그 다음 집을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집을 지을 수 없단다. 집을 비우고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아무 문제없이 잘 살던 집을 못 쓰게 만들어 놓고 다시 짓지도 못하게 하면 우린 어떻게 하냐”고 답답해했다.

 

▲ 집 내벽에는 수십곳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위험한 상태다.

오락가락 행정, 2013년에는 건축허가

답답하기는 청주시도 마찬가지다. 도로시설과 관계자는 “우리도 건축허가가 안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정대로 준공날짜를 맞추려면 도로공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김 씨 가족이) 집을 비우지 않아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고도제한은 국토이용에 관한 법률과 청주시 도시계획 관련 조례에 근거해 집행되고 있다. 관련 조례에는 해당 지역을 ‘우암산 인근 최고고도지구’로 정하고 있다. 시민들이 우암산을 보는데 건축물이 시야를 가리는(조망권 침해)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 지역의 최고고도는 94m로 건물 높이가 해발 94m이하여야 한다.

확인 결과 김 씨의 집 마당(바닥)의 표고는 해발 93m였다. 법대로라면 높이 1m이상의 건축물은 질 수 없다. 하지만 김 씨의 집은 2004년 건축 신고를 한 9m 높이의 2층집이다. 고도제한 조례는 1992년도부터 적용됐다. 김 씨가 더 답답해하는 이유다. 김 씨가 집을 지을 2004년에도 고도제한 대상이었지만 아무 문제없이 진행된 것이다. 당시 자료를 확인하려 상당구청 건축과에 문의했지만 통합전 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현재 청원구청사에 문서가 보관돼 있지만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아한 점은 또 있다. 취재진이 확인 결과 표고가 김 씨의 집과 비슷한 인근 주택도 2013년 상당구청에 건축 신고를 하고 새로 집을 지었다. 해당 주택도 고도제한에 걸린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는 무엇도 확인해주지 못했다.

일관성 없는 행정이 못 지을 곳에 집을 짓게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보상비를 지급해 세금을 낭비한 꼴이 돼버렸다. 반대로 김 씨 등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청주시만 믿었다가 재산상의 피해를 입게 됐다.

법대로라면 공사로 인해 파손된 건물은 새로 지을 수 없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금 상태로 살 수도 없고, 새로 지을 수도 없다. 집을 지을 수도 없는 땅을 택지로 매매할 수도 없다.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당장 살 곳도 마땅치 않다. 청주시 관계자도 “억울한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벌써 수개월 전 싸놓은 짐은 풀지도 못하고, 난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유일하게 바랄 수 있는 것은 현재 청주시가 고도제한 관련 조례를 완화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5년마다 진행하는 관리계획 재정비 용역이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고도제한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이 꾸준히 제기돼 고도제한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내년 초 조례 개정이 예상된다. 문제는 그에 앞서 이번 민원만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청주시가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김태철 씨 가족은 오늘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서 또 하루를 지내야 한다.

▲ 김태철 씨 집와 연접한 우암산 터널.

 

▲ 화강암층으로 이뤄진 도로개설 구간은 발파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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