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일제부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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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일제부역자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5.08.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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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광복 70주년이다. 박근혜 정부는 광복절 전날인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놓고 뜬금없이 건국 67주년이란다. 여러 헌법학자들이 지적하듯 이는 반(反)헌법적인 발상이다. 제헌헌법 전문에 ‘1919년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1948년 대한민국을 재건했다’고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광복(光復)의 사전적인 의미가 ‘빼앗긴 땅과 주권을 되찾음’인데 굳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사람들은 뉴라이트 계열의 일부 우파들이다. 또 친일전력이 선명한 언론들도 최근 같은 주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제부역자 청산에 실패한 후과가 이와 같이 크다. 사실 친일파 청산이란 말부터가 잘못된 개념이다. 친일이란 말은 말 그대로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영화 암살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 중 하나는 아네모네의 멋스러운 춤판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의 상류문화를 맘껏 누리던 한국인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를 읽으면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났다. ‘낙엽을 태우면 잘 익은 커피냄새가 나고, 백화점에 들러 커피알을 찧어 집으로 돌아오고, 무엇보다도 이번 겨울에는 스키를 배우겠다고….’ 믿기지 않는다면 수필을 다시 한 번 정독해 보라.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었고, 일제에 부역함으로써 일신의 안위를 보장받은 자들이 있었다. 지식인들 중에는 처음에 반일을 하다가 광복의 미래가 보이지 않자 자치권을 확보하려 일제에 협조한 이들도 있고, 암살의 염석진처럼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며 부역의 길로 들어선 자도 있다.

그 외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일본신문물에 경도되고, 일본음식에 매료되고….’ 이런 이들이 친일파다. 우리 사회에 현재 ‘친미-반미’가 있는 것처럼 ‘친일’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청산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세계대전 중에 나치에 4년여 동안 점령을 당했던 프랑스는 친독파가 아니라 나치부역자를 청산했다. 체포대상은 첫째 민병대원, 친 나치 선전원, 계엄 군법재판소 검사와 판사, 고위 공직자였고, 둘째 친 나치정부와 독일을 찬양하는 언동을 했거나 수상한 태도를 취한 자들이었다.

대숙청에 의해 르노자동차의 루이 르노 회장이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며, 민족주의 사상가 모라스, 요식업계의 대부 맥심 등이 수감됐다. 12만 7751명이 재판을 받아 6760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 가운데 760명은 실제로 사형이 집행됐다. 나치부역자의 정계진출은 완전 봉쇄됐다. 부역언론들은 강제 폐간됐고, 문인들은 작품발표가 금지됐다.

충청리뷰가 지난 호 표지이야기로 충북의 친일에 대해 보도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충북지역 인사 107명의 면면을 다룬 내용이다. 그런데 이들의 삶은 단순 친일이 아니라 분명한 ‘일제부역’이다. 일제의 작위를 받고 작위를 자식에게 승계했으며, 독립운동가를 붙잡아서 잔인하게 고문하고,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일제의 침략전장으로 젊은이들이 내몰았고 비행기를 헌납한 이들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부역자 민영은, 방인혁 등은 운 좋게도(?) 일제강점기에 천수를 다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부역자들은 해방 후에도 부와 권력을 누렸으며 이를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승계시켰다. 이미 부역의 당사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으니 처벌할 대상은 사라졌다. 그러나 일제부역으로 얻은 재산은 지금이라도 환수해야 하고, 부역의 실상을 낱낱이 알려 후손들이라도 대신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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