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단수사태 시작부터 현재까지/초기대처 실패하고 매뉴얼 무용지물
앞으로 사고원인 조사·피해보상 처리·TF팀 가동·매뉴얼 정리 등 ‘산적’

청주시 수돗물 단수사태는 올 여름 최악의 사고로 기억될 것이다. 사고 발생 1주일여가 지난 지금 사고 수습책 마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청주시는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5인의 사고원인조사위원회를 가동하고 내부에는 TF팀을 만들었다. 또 200mm 이상의 수도관을 공사할 때는 시행부터 준공까지 전직 공무원들에게 자문을 받도록 하고, 안전 매뉴얼을 손본다는 방침이다. 사고가 터지면 뭔가 만드는 건 중앙정부나 지자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재발방지 대책을 확실히 마련하는 것이다.
 

사고원인 조사는 앞으로 상수도 분야의 권혁재 청주대 교수와 토목분야 연규방 충청대 교수, 기계분야 안규복 충북대 교수, 그리고 현장경험자로 이춘배 전 청주시 도시건설국장 등이 맡는다. 시는 최대한 빠른 시일내 결론을 낸다는 얘기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끝나면 피해주민 대표를 포함한 피해배상협의기구를 구성해 배상에 나선다는 것. 시는 피해배상 얘기를 꺼내면서 일단 피해주민들의 소송 움직임을 잠재우긴 했으나 주민들의 요구가 얼마나 받아들여질 것인가가 관건이다.

사고가 난 뒤 청주시가 보여준 뒤죽박죽 행정은 지탄받아 마땅할 수준이라는 여론이다. 상수도사업본부는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에 통합정수장 현대화사업 공사를 시작했고, 공사 전 단수조치를 하지 않고 직접하는 무단수공법으로 했다. 이 두 가지가 크게 잘못됐고 특히 무단수공법은 안전불감증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들이 많다. 시민들에게 어느 시간대에 공사를 하니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식수와 생활용수를 받아놓으라는 사전 예고를 한 뒤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후 사고가 난 뒤 바로 안전도시주택국과 함께 사고대책반을 구성하고 현장복구, 대응조치, 대시민 홍보 등을 나눠서 착착 진행했어야 하나 컨트롤타워가 없어 엉망진창이 됐다. 지난 2일 시장이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을 때도 전국장을 소집하지 않고 행정지원국장과 몇 몇 구청장만 부른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사례라는 후문이다. ‘안전’업무를 하는 안전도시주택국장은 이 날 부르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성택 새정치민주연합 시의원은 “지역구 주민들이 피해를 당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정수장 공사에만 매달리고 피해주민들에게 급수하는 사람이 없어 큰 고생을 했다. 시가 사고대책반을 가동하지 않아 모든 게 엉망이었다”고 지적했다. 급수는 행정지원국이 사고 발생 둘째날 지시해 이뤄졌다. 신동오 행정지원국장은 “상수도사업본부에서 너무 안이하게 판단해 큰 화를 불렀다. 사고난 뒤 빨리 협조요청을 했어야 하나 ‘바로 복구된다’며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아 급수가 늦어졌고, 다른 기관에 도움 요청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청주시 통합정수장.

청주시 안전관리계획에 따르면 수도관로 사고시 어떻게 움직이고, 어느 기관에 협조요청을 하라는 계획이 나와있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났을 때는 아무도 안전 매뉴얼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다. 연제수 안전도시주택국장은 “안전매뉴얼이 있으나 활용하지 못했다”며 “다만 공사하다 시설물이 파손됐을 때 지침이 없어 이제 전문가들과 상의해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시장은 최근 전명우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전격 경질하고 시설과장을 전보 발령했다. 전 본부장은 자진사퇴 형식을 빌었지만 순수하게 본인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7일 시장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인사부서는 의원면직시 필요한 결격사유 등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은 지난번 CI 사태 때는 이 모 전 실장, 이번에는 전 본부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은 필요하나 재난시 진두지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은 이 시장에게 분명히 있다는 게 시민들의 여론이다.

“수도관 공사를 하필 폭염에 하다니 이해 안돼”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단수사태, 메르스와 닮은 꼴”

 

▲ 이재은 교수

“이번 청주시 수돗물 단수사태를 보면 메르스 때와 똑같다.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 시민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다. 재난이 발생하면 어느 정도 피해가 예상되는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알려줘야 대비를 하지 않나. 그런데 청주시의 예측이 두 번이나 빗나가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신뢰에도 금이 갔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폭염에 물이 안 나오는 것은 삶과 죽음을 왔다갔다 할 정도로 힘든 일이다. 폭염 자체만으로도 이미 재난 상황이다. 돈있는 사람들은 사우나장에도 가고, 물을 사먹을 수도 있지만 저소득층이나 소년소녀가장·독거노인·장애인 같은 재난 취약계층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면서 “공사를 하필 이 폭염에 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재난이 발생하면 예방-대비-대응-복구 수순으로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재난 취약계층과 일반병원, 요양병원 등의 환자들을 우선지원대상자로 정해 우선배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복구 후에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완벽하게 복구됐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청주시는 재난발생시를 대비해 시내 대형마트들과 ‘재난시 생필품을 시에 우선 공급한다’는 내용의 MOU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필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곳은 마트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시에서 생필품을 신속히 확보해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줄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추라는 것이다. 이것도 사전에 해놓아야지 재난시 하려고 하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이번 단수사고를 당한 주민들이 청주시에 피해보상을 요구한다고 하자 청주시는 피해배상협의기구를 통해 배상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공익적인 성격의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주시나 시민들이 배우는 게 있다. 시는 일을 잘못하면 시민들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주시 ‘장군’하면 시의회 ‘멍군’
청주시의회 단수사고 조사특위 슬그머니 미뤄···시민들 ‘왜 안해?’

 

청주시 CI사태 때와 비슷한 일이 이번에도 발생했다. 청주시에서 ‘장군’하면 시의회가 받아 ‘멍군’하는 식으로 양쪽이 같은 배를 탔음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시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 5월 상임위에서 부결시킨 새 CI 관련 조례를 날치기 통과시켰다. 그러자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새누리당 의장과 의원들이 같은 당 소속 이승훈 시장을 돕기 위해 여론을 묵살하고 끝까지 힘으로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더니 시의회는 수돗물 단수사태에 대해 다시 한 번 청주시 봐주기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병국 의장과 시의원들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는 단수사고와 관련해 조사특위를 구성하고 진상조사와 사후대책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집행부에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원인규명을 하고 피해배상협의기구를 통해 배상 계획을 밝혀 이 조사결과를 지켜본 뒤 대응키로 했다”고 말했다.

집행부 조사가 미흡하면 특위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나 특위는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시의회는 기자회견 전, 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대변인과 새누리·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최충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특위를 열자는 얘기를 의장이 처음 꺼냈는데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도 단수사태 때 보여준 청주시의 대처 능력에 상당히 문제가 있어 특위를 하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장이 특위를 하지 말자는 쪽을 주장하면서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

시의회는 지난 3일 도시건설위원들이 단수사고가 발생했던 정수장을 방문한 것 외에 한 일이 없다. 단수 피해지역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였을 뿐 시의회는 사고 1주일이 지나서인 10일에서야 특위 구성건 때문에 의장과 상임위원장 등이 만났다. 안 그래도 시의회는 이번 사태에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질타를 받는 판국에 곧바로 해외연수가 계획돼 있다는 것이 알려져 '해외연수 때문에 특위도 포기하느냐'는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

한 시민은 “집행부를 감싸고 도는 게 시의회의 본분인가. 시의회는 집행부를 견제·감시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철저히 조사해서 시민들에게 알려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런데 시장이 새누리당이라고 다수당인 새누리당에서 너무 집행부 편을 들고 있다”며 “뒤에는 이런 시의회를 감시하는 시민들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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