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일이 바쁜건지 감성이 메말라선지 벌써 몇 해 전 삼천만이 다 봤다는 쉬리를 본 걸 빼고는 참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갔다.
이번의 극장 나들이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면재냐? 나 xx인데 오랜만이다. 너 영화하나 보러가라,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고 괜찮더라. 거기 보니 우리 다니던 고등학교도 나오고 수안보도 나오고 그러더라. 그리고 그거보고 있으면 옛 생각도 좀 나고 그렇더라. 마, 약 장사만 하지말고 식구 손잡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그래라.” 진짜 오랜만에 전화한 녀석이 진짜 뜬금 없는 영화얘길 하길래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하고 끊었는데 그러고 나니 녀석이 어느 신문사 문화부기자 한다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났다. 영화보고 월급 받는 저나 재밌지....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영화를 보러갔다. 영화는 고교시절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음악으로 살다 죽으리라던 친구들이 세월이 흘러 누구는 시청 공무원이 되고 또 누구는 환경운동가가 되었고 또 주인공이 되는 인물은 밤무대의 초라한 악사가 된 이야기인데 그러나 거기 제법 안정된 삶을 사는 약사가 된 친구가 하나 있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젊다는 것 하나로 모여 혁명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고 밤을 새워 통음하며 오지 않는 새벽을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이상이 현실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아니 허망한 이상이나마 없었다면 견딜 수 없는 현실이 두려웠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골목길을 비틀거리며 다니던 그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은 또 다른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후 나는 약사가 되었고 그 시절의 다른 친구들은 공무원이 되었으며 개인택시 기사가 되었으며 알만한 기업체의 사장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들 중 누가 ‘초라한 악사’로 남았고, 누가 ‘꼭 막힌 운동갗로 남았으며, 누가 ‘이상에도 현실에도 발붙이지 못해 자살한 공무원’이 되었고, 누가 ‘중산층의 미지근한 여유를 즐기는 약사’가 되었을까?. 약사, 그렇다면 영화 속의 약사가 나와 가장 가까운 모습일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전화한 그 친구가 처음부터, “거기 약사가 하나 나오는데 꼭 너 닮았더라”했을 것이다. 그 친구나 나나 지금 우리가 무엇이 되어있든 거기 악사도 나이며, 공무원도 나이고, 운동가도 나일 것이다. 우리 모두 그 시절을 함께 지내왔고 그 시절에 대한 부채와 아쉬움과 연민이 여전히 마음깊이 남아있기에 모두 나의 다른 얼굴일 것이다. “영화나 한 편 보러가라”는 전화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 후에도 친구에게 묻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무엇이 되어있든 하얀 약사 가운과 운동가의 개량한복과 악사의 반짝이 의상을 벗고 ‘벌거벗은 채 바닷가를 달리던’ 시절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려 한 것이라면 그 의도는 적중한 것 같다. 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록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으며,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지난날의 시간여행에서, 쉽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제 와서 유치한 나날이었다고 쉽게 말하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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