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하면 교육 문화의 도시를 연상한다지만, 솔직히 말하면 청주시민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중·소도시 치고 대학이 없는 곳이 없고 청주가 전국에 내놓을 만한 우리만의 무엇이라고 자랑할 것이 과연 있는가? 이런 시점에 청주시가 ‘어제의 직지를 오늘의 직지’로 부활시킨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나기정 청주시장은 관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임명직과 선출직으로 두 번이나 시장을 하셨으니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하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임기동안 청주의 역사문화에 뭔가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첫 시장임기 중에 청주시를 두 개의 구로 나누며 여느 도시처럼 동구 중구 혹은 서구 대신 흥덕구와 상당구로 이름하여 청주라는 도시의 역사성을 부각시켰고 청주의 치부인 오정목을 방아다리로, 본정통을 성안길로 이름을 고치고 예쁘게 타일로 포장하여 현대적 감각을 살리는 멋도 부렸다.
민선 시장에 취임하여 오로지 직지에 매달리는 인상을 줄 정도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시민운동 차원으로 확산시켰다. 직지되찾기, 숨은 반쪽 찾기, 자전거달리기, 오페라, 오페라사진전, 직지출판전, 세계문화유산지정, 구름다리 등을 통해 시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하여 어제의 직지를 오늘의 직지로 부활시키는 결실을 일구어 냈다.
그러면 내일의 직지는 청주시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존재할 수 있을까? 여러 해전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굴된 것 중에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있다. 필자가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 경전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간에 벌어진 논쟁이다. 논쟁의 초점은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아니라, 목판 인쇄의 유래를 두고 양국 간에 서로가 먼저라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 측의 주장은 같은 시기에 한반도에서 비슷한 목판 인쇄물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그 경전은 중국에서 목판 인쇄된 후 신라로 건너가 석가탑에 봉안됐다는 것이다.
청주도 내세우는 자랑이 흥덕사에서 만들어진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이다. 내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직지 자체인가? 최초의 금속활자인가? 어느 쪽이 더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주고 있는가? 필자는 오늘날 직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 내용에 있다기보다는 역사성과 과학성에 근거한 인쇄방법에 있다고 생각한다. 청주 시민들도 직지의 내용이나 제대로 된 이름은 몰라도 금속활자의 역사성과 과학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일의 직지는 우리 앞에 과학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현신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제의 직지로 끝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다. 우리는 이미 컴퓨터-인터넷시대에 살고 있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간이 남의 글을 읽으며 사색하고 개인주의를 발달시켰다면, 지금은 컴퓨터로 내 생각을 전세계로 순식간에 알릴 수 있고, 동시에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개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직지의 과학적인 모습은 인쇄술와 컴퓨터사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직지출판전’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고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컴퓨터에 응용될 수 있는 ‘글꼴’ 혹은 ‘포스터전시회’ 등으로 내일의 직지가 발전되기를 희망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