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육성준 사진부장

▲ 육성준 사진부장

‘봉지맨’을 찾아 그의 집으로 들어섰다. 문은 늘 열려있다고 했다. 또 그 시간 그의 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금 열려진 현관문 사이로 심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돼지축사냄새가 100이라면 그 냄새는 1000정도였다고 표현하고 싶다. 참지 못한 취재기자는 밖으로 뛰쳐나갔고 평생 맡아보지 못한 악취를 삼켜가며 혼자 방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실로 이곳이 사람이 사는 집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하지 못한 작은 방문 하나가 보여 문을 천천히 여는 순간 그 정체를 몰랐던 악취가 풍겨나져 나왔고 동시에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보였다. 순간 필자는 깜짝 놀라 심장이 멈춘 듯 했고 그대로 몸도 멈취버렸다. 한 사람의 눈동자가 뚫어져라 이쪽을 보고 있었고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분명히 아무도 없다고 했는데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랫동안 방치된 시신 냄새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억지로 셔터를 눌렀고,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은 그제야 일어서며 손에 든 봉지를 흔들었다. “아, 살아 있었구나.” 안도의 한숨과 함께 우리가 찾던 ‘봉지맨’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20여년 가까이 청주시 율량동 주변에서 봉지를 들고 떠돌던 ‘봉지맨’의 안타까운 사연을 본보를 통해 밝혔고 카드뉴스를 만들어 SNS까지 더불어 전파됐다.

그로부터 보름 뒤,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 있는 ‘봉지맨’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봉지맨’ 이 아닌 김○○라는 부모로부터 받은 귀한 이름이 있었고, 나이 40세의 건장한 사람이었다. 비록 지적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의 모친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나름의 보살핌을 받았고, 이후 알코올 중독자인 부친에게 방치돼 생활해 왔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몇 차례 찾아간 필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는지 “친구, 친구”하며 악수를 청하며 웃는 얼굴로 반겼다. 지켜보는 원장도 처음 올 때보다 표정도 밝고 밥도 잘 먹는다고 했다. 그는 이젠 ‘봉지맨’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의구심이 들었다. 국가는 왜 이 같은 약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해 주지 못할까? 또한 이러한 상황을 알고도 그동안 방관한 이웃과 지역사회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이 확인됐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구출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앞으로도 기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의 눈길을 늘 쏟으며 카메라를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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