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말년을 몹시 적적하게 보냈던 모양입니다. 과거에 낙방 한 뒤 서른이 넘도록 줄곧 방랑으로 세월을 보낸 그는 마흔이 넘어 어렵사리 시골 관아(官衙)의 좌습유(左拾遺)라는 벼슬을 얻었으나 안정을 얻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자고로 사람이 칠십을 살기 어렵다는 ‘인생칠십고래희’는 그의 나이 마흔일곱에 지은 불후의 작품‘곡강(曲江),에 나오는 글인데 4행의 시속에는 쓸쓸했던 노년의 심경이 잘 배어있습니다.
―날마다 조정에서 올 때면 옷을 잡혀 / 강둑에서 잔뜩 술 취해 돌아온다 / 누구나 어디든 술빚은 있기 마련 / 자고로 칠십을 살기 드믄 것이 인생이라네(朝回日日典春衣 每日江頭盡醉歸 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두보는 일생을 시상(詩想)에 묻혀 유유자적하다가 쉰 아홉 되던 해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1930년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얼마였을까? 최근 공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놀랍게도 당시 우리 국민들의 수명은 남자32,4, 여자35,1세로 평균33,7세였다고 합니다. 지난해 평균수명이 남자71,7세, 여자79,2세(평균75,5세)인 점을 감안하면 70여 년 만에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무려 42년이나 늘어난 셈입니다.
수명이 그처럼 크게 연장된 것은 경제발전에 따른 식생활 개선과 주거환경개선, 의학의 발달로 볼 수 있지만 수 십년 사이에 수명이 두 배 나 넘게 연장 된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입니다. 2천여년전 진시황이 불로초를 얻기 위해 5백 동자를 미지의 섬으로 보낸 것도, 오늘날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는 것도 불로장수를 위한 인류공통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삶의 질입니다. 서구 선진국이야 사회복지가 완벽하게 갖추어져있어 노인들이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고있지만 복지라는 말 자체가 부끄러운 우리 실정에서 오래 산다는 그것만으로 축복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야 그나마 어른을 섬기는 유교적 효 사상이 투철해 가정과 사회로부터 보호 를 받았지만 그것이 옛이야기가 된 지금, 노인들은‘천덕꾸러기’가 되어 설자리 조차 잃고있는 형편인 것입니다.
나이 든 사람을 천대하는 사회가 좋은 나라 일수는 없습니다. 나이든 사람을 천대하면서 인터넷이 무슨 자랑이고 월드컵이 무슨 자랑이 될 수 있을까요.
채근담에는 노인을 빗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하루해가 저물매 황혼 빛이 아름답고 한 해가 기울려하니 귤 향기가 더욱 그윽하다.’정말 좋은 글입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