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밥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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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밥과 자유
  • 충청리뷰
  • 승인 2015.07.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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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 읽기

옷과 밥과 자유
김 소 월

공중(空中)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여
네 몸에는 털 있고 깃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숙으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狄踰嶺)
넘어 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 동인지 ‘백치(白稚)’ (1928)

 

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1920년대, 식민시대의 한 풍경 속에 절제된 탄식과 연민을 바탕으로 직접 옷과 밥과 자유를 얘기하지 않으면서 그 고통과 결핍이 선연합니다. 우선 공중에 떠다니는 새의 깃털을 가리키면서 당시 사람들이 헐벗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눌하게 익어서 고개 숙인 곡식은 조선의 민초들에게는 한낱 그림에 떡이고요. 초산 지나 적유령 넘어 고토를 잃고 떠도는 시적화자는 바로 짐 실은 당나귀의 고단함과 다름없는 처지이지요. ‘너 왜 넘니?’ 라는 마지막 구절은 굴레를 씌운 듯 자유 없음의 핍진한 사연이 길게 암시되어 있어 더욱 아프게 읽힙니다. 직설적인 제목 그대로 옷과 밥과 자유를 모두 빼앗긴 상황이 바로 곤궁한 식민지 조국의 현실임을 가감 없이 표현하고 있는 시입니다.

1925년 ‘진달래꽃’ 이후 각종 형태로 발간된 소월의 시집은 70여종에 백만 부 이상으로, 누구나 그의 시 한 두 편은 외우고 있을 정도로 명실 공히 국민시인이지요. 그의 시는 대저 민족의 전통적인 호흡과 가락과 정서를 바탕으로 짙은 한과 애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시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러한 서정의 세계에서 눈을 돌려, 깊은 한의 정서조차 초월한 지점에서 발현되는 현실인식이 돌출된 작품이 몇 편 있지요. 소월은 우리 시사에 매우 소중한 영역을 점하고 있는 시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민요조의 정한의 시인’이라는 지극히 편향된 해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소월 특유의 운율을 살려 그가 직면했던 식민 상황의 사회적 시대상과 역사의 아픔을 노래한 작품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지요.

여기서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위의 시의 다음 칸쯤에 놓이는 작품 ‘나무리벌 노래’를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신재령(新載寧)에도 나무리벌/ 물도 많고/ 땅 좋은 곳/ 만주봉천(滿洲奉天)은 못 살 곳.// 왜 왔느냐/ 왜 왔느냐/ 자곡자곡이 피땀이라/ 고향산천(故鄕山川)이 어드메냐.// 황해도(黃海道)/ 신재령(新載寧)/ 나무리벌/ 두 몸이 김매며 살았지요.// 올벼 논에 닿은 물은/ 출렁출렁/ 벼 자란다/ 신재령(新載寧)에도/ 나무리벌.

이 작품 역시 소월의 식민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고향산천에서 쫓겨나 나라 잃고 유랑하는 백성의 궁핍과 고통이 절절합니다.

끝으로, 위의 작품에 나오는 손때 묻은 조국의 곡진한 지명들, ‘초산 지나 적유령’, ‘황해도 신재령 나무리벌’, 이런 이름들을 남과 북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부르며 오고 갈 날들을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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