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명 돌아가며 농성장 지켜…모기는 예사, 쥐에 물려 병원행도
3차 공모는 10월 중순 이후 진행, 100일 이상 더 한뎃잠 자야

청주시청의 아침은 투쟁가로 시작된다. 오전 8시면 어김없이 차량에 장착된 스피커를 통해 어김없이 힘차게 터져 나온다. 오늘(7월 28일)로 83일째다. 그들은 데모꾼도 싸움꾼도 아니다.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어느 가정의 어머니들이다.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이들은 청주시가 운영하는 노인전문병원에서 간호사로 간호조무사로 간병사로 조리사로 묵묵히 일하던 평범한 청주시민이었다.

▲ 66명이 모여 진행하는 아침 선전전

아줌마에서 투사로, 어머니는 강하다

그간의 일을 간단히 정리하면 간병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세상에 알려지고, 착취와 불평등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단체행동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노인전문병원의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하나 둘 드러났고, 운영진의 불법행위도 드러났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못했고, 지난해 3월 29일 파업에 돌입하며 본격적인 권리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운영자 측은 ‘노조때문에 병원운영이 어렵다’며 적반하장식 행태를 보이다 결국 5월 6일 병원을 폐쇄한다고 밝혔고, 다음 날부터 이들은 한뎃잠을 자는 신세가 됐다.

왜 천막농성인가. “우리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도 해보고 공문 같은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도 봤지만 (청주시)아무도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시장실에 쳐들어가고 온몸으로 외치니까 그제 서야 본 척이라도 하더라. 법으로 보장받지도 못하고 싸워야 얻을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이 80여일째 진행되고 있다. 고용승계와 조례 개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은 위태롭기만 하다.

거의 매일 천막에서 잠을 자는 권옥자(간병사·노조 분회장)씨의 설명이다. 권 씨는 66명 노동자의 리더다. 해고와 폐업으로 간병사와 간호사 등 노인병원 노동자 1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났고, 조합원인 66명이 시청 앞 천막농성장을 중심으로 메아리도 없는 시청사에 대고 고용승계와 관련 조례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천막생활은 어떨까. 힘든 생활이지만 이들은 애써 웃는다.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웃음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다. 폐업 때까지 근무했던 한 노동자는 “지금이 마음고생은 덜하다. 일과 병행할 때는 몸도 마음도 더 지쳐있었다”고 말했다. 노조에 대한 병원 운영진의 반감이 노동자 탄압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노동 강도는 갈수록 강해졌고, 임금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4월 임금은 20%만 지급됐다. 노인병원 간병사들은 150만원 내외의 월급을 받았다. 5월, 이들의 통장에는 30만원 정도만 입금됐다.

 

노숙으로 시작해 천막으로 진화

지난 27일 천막에는 대공사가 진행됐다. 80일간 사용했던 바닥을 걷어내고 은박스티로폼을 깔았다. 권 씨는 “지난주 내린 비에 바닥이 모두 젖어 눕지도 못할 형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시청 앞 농성장에 천막이 들어선 것도 비 덕분(?)이다. 첫날인 5월 7일은 아무것도 없이 노숙을 했다. 맨몸으로 시작했던 농성은 4일째인 11일 비가 내리며 진화했다. 비가림막과 바닥 깔개가 설치됐고, 이후 천막으로 발전했다.

▲ 벤치를 식탁삼아 간단히 끼니 해결

66명의 조합원은 3개 조로 나누어 농성장을 지켜왔다.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선전전에는 조합원 전원이 참여한다. 그리고 낮에는 일명 사수조(22명)라 부르는 1개조가 농성장을 지키면서 그날 발생하는 상황에 대응한다.

28일에는 오후 2시에 별도의 선전전을 펼치기로 했다. 당일 아침에 결정한 일로, 그 시간에 이승훈 시장이 업무보고를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권 씨는 “우리가 여전히 시청 앞에 버티고 있고, 청주시를 향해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후 5시가 되면 66명의 조합원은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 퇴근시간에 맞춰 집회와 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루 일과의 마지막이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면 3명의 조합원이 밤새 천막을 지킨다. 해가 지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잠을 청하며 자리에 눕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천막이 있다고 하지만 도로 옆 잠자리는 이래저래 불편할 수밖에 없다. 모기는 양반이다. 지난밤에는 쥐가 귀를 물었다. 새도 잡아먹는다는 엄청난 크기의 쥐는 일전에 권 씨의 손을 물기도 했던 쥐다. 그날은 잠든 김민희(58) 씨의 귀를 물었고, 김 씨는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지만 쥐는 그 뒤로도 한참을 더 있다가 귀에서 떨어졌다. 권 씨는 “노인병원에서 일하며 겪을 거 안 겪을 거 없이 경험했다. 그때야 놀랐지만 또 다시 그럴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천막 뒤에는 쥐들이 많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 하루 일과를 마치면 긴 밤이 시작된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3차 공모는 10월 중순이 지나서야 진행될 테고, 이들의 바람대로 수탁운영자와 대화가 잘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100일 이상 더 천막생활을 해야 한다. 지치고, 힘들지만 응원하는 가족들이 있어 이들은 버틸 수 있다. 한 노동자는 “사정없는 집이 어디 있겠나. 다들 먹고 살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 중 더 어려운 사람은 우리끼리 돈을 모아 꿔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포기하고 싶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막을 들려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고, 후원금을 주는 이도 있다. 권 씨는 “한번은 노인분이 오셔서 ‘다 우리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미안하다며 조심스럽게 만원을 건네고 가셨다”며 “일부에서는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거 안다. 그분들께 여쭙고 싶다. 운영자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바뀔 수 있다. 그때마나 고용불안을 겪는 것이 옳은 일이냐. 우리는 물론 우리 뒤를 이어 같은 일에 종사할 동료들이 고용불안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 2014년 3월 29일 파업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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