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무더위를 무색케 만드는 난방 전쟁
지역난방으로 변경하자 “취사용 가스 공급 끊겠다”

“취사용 연료로만 도시가스를 공급할 수는 없다. 우리만 적자를 감수하라는 얘기냐.”↔”충분한 시간을 두고 난방방식 전환 방침을 도시가스 공급업체에 고지했다. 이제 와서 적자 운운하며 취사용 도시가스조차 공급할 수 없다고 나서는 것은 기업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현대아파트가 난방방식 전환을 놓고 도시가스 공급업체인 (주)청주도시가스와 아파트 입주민간 갈등에 휘말리며 한여름 무더위를 무색케 하는 뜨거운 ‘열전’을 장기간 이어가고 있다.

476세대에 2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용암동 현대아파트는 1995년 10월 입주 이후 지난 6월말까지 중앙집중난방방식에 사용되는 연료를 청주도시가스로부터 공급받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난방용 보일러 시설이 낡아 시설교체 또는 개선 필요성에 부닥치자 입주민 동의서를 받아 난방방식을 지역난방 방식으로 전환키로 결정했다. 현재 이 아파트는 관련 난방시설 교체 공사가 진행중이다.

   
▲ 용암동 현대아파트의 난방시설 교체공사 현장/ 육성준 기자
그러나 청주도시가스 측에서 “아파트의 난방방식이 지역난방으로 전환되면 취사용 도시가스만 공급해야 하는 데, 이럴 경우 적자 운영이 불가피하다”며 ‘7월 말 일자로 도시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을 지난 7월 2일 통보하면서 입주민들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청주도시가스는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취사용 도시가스만 공급할 경우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더 이상 도시가스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뜻을 전달했으나 아파트 주민들이 이를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지역난방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해 10월 지역난방공사와 청주도시가스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를 연 데다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수차 공문발송 및 회동을 통해 지역난방방식 전환에 따른 도시가스 공급 변경을 협의했는데도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취사용 도시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도시가스 독점 공급업체의 횡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은 특히 “청주 시내에서 여러 아파트가 지역난방방식으로 전환하고도 모두 취사용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상황에서 유독 우리 아파트만 문제삼는 것은 형평성 측면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청주도시가스는 이에 대해 “현재 아파트 단지의 도시가스 사용량 중 90% 이상이 난방용 요금인 상황에서 지역난방으로 전환해 취사용만 사용할 경우 유지관리비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취사용만 공급할 경우 일반 고객들에게서 얻은 수익으로 지역난방 전환 아파트를 보조해 주는 셈이 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청주도시가스는 또 수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역난방으로 전환하면서 5000만원 정도면 충분한 LPG공급시설을 하지 않고, 도시가스 공급을 계속 요구하는 것은 기업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주민들의 일방적 이기주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돌파구 마련 없이 팽팽하게 대립하며 갈등이 고조되자 지난 7월 23일 이 지역구 출신인 유성훈 청주시 의원 중재로 충북도와 청주시, 가스 안전공사 관계자와 청주도시가스 측, 아파트 대표자 회의 대표들이 대화에 나서는 등 여러 차례 테이블에 마주 앉았으나 현재까지 별 소득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도시가스 측에서는 당초 밝힌 방침과는 달리 7월 31일부터 중단키로 한 취사용 가스공급을 계속하고 있어 극적으로 접점을 찾을 가능성은 남겨 놓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집단 에너지법의 개정이 전제되지 않는 한 앞으로 난방방식을 전환하고자 하는 아파트들이 무더기로 이번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어 사회적 갈등과 이로 인한 비용이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상자기사) 특히 주민들이 갈등의 전면에 노출됨으로써 애꿎은 피해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주민들도 “도시가스 측이 우리 아파트에 대해서만 취사용 가스를 공급 중단하겠다며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향후 다른 아파트들이 잇따라 지역난방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 즉 ‘도미노 현상’을 막아보려는 전략”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이런 때문에 도시가스 측은 물론 주민들조차 산업자원부와 충북도·청주시 등 관계 당국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도시가스 측 피해의식 왜 불거졌나?
“집단 에너지법 난방공사에만 유리”
시장 빼앗길 것 우려해 ‘자충수’ 불사


“이러다가 시장을 다 빼앗기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크다. 그동안 버틸 만큼 버텼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기업의 존립기반 자체가 와해되는 건 시간문제다. 집단에너지 사업법상 신규 택지개발지구 난방시장에는 도시가스의 진출이 원천 봉쇄돼 있다. 1998년 청주에 진출한 지역난방공사에게 독점권이 주어져 있는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기존 아파트 난방시장이 빠른 속도로 지역난방에게 넘어가고 있다. 청주에서 도시가스(중앙난방방식)→지역난방으로 바뀐 세대가 8개 단지에 4000세대에 이르고, 유류(벙커 C유)를 쓰던 중앙난방방식아파트 중 지역난방으로 바꾼 곳은 10개 단지에 6000세대다. 총 1만 세대가 지난 5년 사이 지역난방으로 바뀐 것이다. 이 수치는 신규 택지개발지구내 아파트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청주도시가스(주)는 “현재 남아 있는 단지는 21개 단지에 1만 3000세대”라며 “공기업체에게 유리하게 돼 있는 집단에너지 사업법이 바뀌지 않는 한 민간기업인 도시가스 공급업체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애시당초 공정 경쟁이 불가능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주지역 난방시장의 분할구도를 보면 지역난방이 전체 아파트의 ‘38%(4만 2000세대)에 공급되고 있고, 6만 600세대는 개별 난방, 중앙난방은 1만 3000세대에 이른다. 도시가스 측은 “우리는 18년 동안 시장을 개척해 왔고 지역난방은 5년 정도 밖에 안 됐는데도 시장 점유율이 눈부시다”며 “산남·강서·개신·성화·가경 4지구 등 신규 택지개발 지역은 지역난방 공급이 확정된 곳들”이라고 한 숨을 내뱉었다.

청주도시가스는 “산업자원부에 관련제도의 개선을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허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거대 기업이 법률 개정을 위한 논리적 대응 대신 주민을 상대로 “도시가스 공급 중단”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처사 역시 온당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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