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반의 여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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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반의 여름이야기
  • 임병무 고문
  • 승인 200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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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호가 생겨나기 이전, 비단강 금강(錦江) 상류에 해당하는 오가리에는 천렵꾼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구봉산, 구룡산의 산 그림자가 땡볕을 막아주고 소백의 협곡을 돌아온 맑은 물에는 피라미, 붕어 떼가 지천이었다.

 강물이 차서 더러 익사사고도 발생하였지만 오가리는 청주, 청원 시군민의 더위를 씻어주는 시민의 강이었다. 강변에 텐트를 치고 멱을 감으면 그 한기(寒氣)가 뼈속 까지 으스스 스며들었다.강변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다 지치면 누가 멀리 가나 물수제비 뜨기 내기를 하였고 밤이 내리면 은하수를 바라보며 미련스럽게 별을 헤다 잠이 들었다.

 그 추억의 물줄기를 막은 대청댐이 조성되더니 물수제비 뜨던 사람도 별 헤던 사람도 자취를 감추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태고의 전설과 원효대사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났다. 1천여년 전, 원효대사는 대청호를 굽어보는 현암사(懸岩寺)에 올라 지형을 살펴보니 아홉 산줄기가 강물을 향해 달리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산 이름을 구룡산(九龍山)이라 했다. 구룡산 산줄기는 임금 왕(王)자를 새기고 있다. 원효는 ‘앞으로 1천년 후 이곳에 3개의 호수가 생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오늘날 대청호 보조 댐이 있는 곳이 용호(龍湖), 대청호가 미호(迷湖), 청남대 부근이 황호(潢湖)에 해당한다.

 청남대 인근에 있는 산 이름은 옥새봉이다. 산의 형국이 임금이 사용하던 옥새를 닮았기 때문이다. 1천여년 전, 오가리 일대는 호수나 통치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곳이다.

 대청호 주변의 ‘용굴’은 이보다 앞서 내려오는 전설의 고향이다. 아주 먼 옛날, 이곳에도 현재와 같은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열 마리의 이무기가 호수에서 살며 승천을 소망했다. 그들은 공동 계율을 정했다. 호수의 물고기를 함부로 잡아먹어서도 안되고 분탕질을 쳐서도 안된다는 계율이었다.
그런데 한 마리의 이무기가 공동 계율을 어기고 마구 분탕질을 쳤다. 옥황상제는 대노하여 열 마리의 이무기를 다섯 마리씩 나누어 큰 용굴(노현리 두루봉 동굴)과 작은 용굴에 가두었다. 속죄의 대가로 1백년간 참회하는 것이었다.

 사고뭉치 이무기는 이를 참지 못하고 도중에서 빠져나와 다시 호수에서 분탕질을 쳤다. 옥황상제는 가시나무로 호수를 막고 물을 모두 빼버렸다. 물고기들은 가시나무 사이를 모두 빠져나와 살았지만 덩치가 큰 사고뭉치 이무기는 가시나무에 걸려 그만 죽고 말았다.

 나머지 아홉 마리 용은 수행을 마치고 모두 승천하였다. 이 강의 원래 이름은 형각강(荊角江), 즉 가시나무 강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형각진(荊角津)에서 용신제를 올렸다’는 기록도 보인다.

 산과 물이 임금 왕(王)자를 새기고 옥새봉을 만든 그곳에 청남대가 생기고 3개의 호수가 조성되고 가시나무로 호수를 막듯 거대한 대청댐이 생겼으니 선인의 혜안에 놀랄 뿐이다. 이제 금단의 구역으로 일반인이 근접조차 못하던 청남대는 개방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여러 사람이 혜택을 봐야하는 물에서 수질오염 등 분탕질을 쳐서는 안 될 일이다. 분탕질을 친 사람이 누구인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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