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중한 분으로부터 아주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최인호의 소설 ‘거상’에서 임상옥이 그토록 아꼈던 전설적인 술잔 ‘계영배’가 바로 그것인데 경기도 이천의 한 가마에서 정성을 다해 빚은 옥빛의 아름다운 자기입니다.

 그 옛 날 중국의 성현들이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의기(儀器)로 만들어 곁에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는 계영배(戒盈杯)는 과음을 삼가는 잔이라 하여 일명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하는데 잔이 갖고있는 의미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깊은 뜻에 있다고 합니다.

 이 잔이 특이한 것은 잔의 어느 한도까지 술을 부으면 그대로 있고 7할 이상을 부으면 모두 새 버리는 신기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2500여 년 전 제(齊)나라 임금이었던 환공(桓公)은 이 술잔을 늘 곁에 두고 본다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이름짓고 스스로 지나침과 과욕을 경계하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삶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훗날 어느 땐가 공자가 환공의 사당을 찾았다가 계영배를 보고는 크게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과욕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공자가 탐욕을 멀리하고 고결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계영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전해집니다.

 계영배의 비밀은 속으로 감추어져 있어 여간해서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사이폰(Siphon)의 원리라는 게 정설인데 현대의 ‘탄타로스의 접시’라는 화학 실험기구와 원리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계영배가 처음 선보인 것은 조선후기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에 의해서 입니다.

 우명옥이 만든 계영배는 뒤에 거상(巨商) 임상옥에게 전해져 그가 항상 옆에 이 술잔을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큰돈을 지켰다고 야사는 전합니다.

 일개 상인이었지만 임상옥이 청부(淸富)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긴 것은 바로 그런 자기 절제의 철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임상옥은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는 오늘 이 시대에도 교훈이 될 명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쨌든 계영배는 오늘 허욕으로 혈안이 되어있는 우리 모두에게 ‘가득 차 넘침’을 경계하는 자족(自足)의 미학을 가르칩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사랑도 마음의 7부까지만 채우고 그 이상은 절제하거나 양보하는 삶의 태도, 바로 거기에 참된 행복과 성취의 아름다움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24일이 처서(處暑). 속설에는 이 날이면 어김없이 기온이 뚝 떨어져 모기가 입이 돌아가 중풍에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긋 지긋하던 폭염도 요 몇 일이 고비일 듯 싶습니다. 한밤중이면 창밖에는 이미 가을의 전령사인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여름을 보내며 생각난 김에 가까운 벗들을 집으로 초청해 얼굴을 마주하고 계영배에 맑은 술을 따라 ‘넘치지 않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정담을 나눠 볼까 합니다. 부족하나 족하다 생각하면 매사 여유가 있고 족하나 부족하다 여기면 늘 부족한 법이니라(不足知足每有餘 足而不足常不足). 명심보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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