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박윤경 진천문인협회 회원

▲ 박윤경 진천문인협회 회원

몸이 둔할 땐 미용실을 찾는다. 처진 모양새로 들어서도 미용사의 손길이 스치면 이미지가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내게는 꼭 실행해야만 속이 시원한 습관이 있다. 머리를 짧게 깎는 일이다. 요즘처럼 ‘메르스’ 여파로 술렁이거나, 몸이 아파 약에 의존할수록 변신을 원한다. 남성의 머리처럼 짧게 자르고 나면 긴장감과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단골미용실 원장님은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나 역시 어떻게 해주길 바란다는 주문을 한 적이 없다. 그저 계절에 따라 그날의 분위기와 가위가 합이 되면 머릿결이 달라진다. 가위의 춤사위가 끝난 후 생기발랄하게 변신한 나를 바라보며 만족해왔다.

오늘도, 마치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의자에 앉자마자 커트가 시작되었다. 재충전으로의 가위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내가 하는 일은 꾸벅꾸벅 천덕스럽게 졸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가위가 내려지고 드라이어의 바람이 머릿결에 힘을 준다. “자 다됐습니다.”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남학생 둘이 문을 밀고 들어선다.

덩치는 하마 같고 둥근형을 지닌 학생은 ‘나 순진합니다.’라고 읽힐 정도로 선해 보였다. 화초 속에서 자란 것 같은 학생은 의자에 앉자마자 “박박 밀어주세요.” 한다. 원장님이 잠시 거울 속의 학생을 빤히 들여다본다. 나 역시 녀석에게 혹여 고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시선을 고정했다. 썰렁한 분위기, 순간이지만 원장님과 함께 어머니로서의 동질감 같은 교감이 이루워졌다. 원장님은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여유를 찾으려 애쓴다.

원장님이 먼저 무슨 이유로 짧게 미는지, 어머니는 알고 계신지 부드럽게 묻는다. 그때야 함께 온 친구가 하는 말이, “전교 1등인 친구인데 공부가 안 돼서 집중하려고요.” 한다. 일순간 웃음이 폭발했다. 공부에 매진하겠노라는 결심을 품고 미용실을 찾았다는 말에 생기가 돌았다. 원장님은 자르기 칼날을 보이며 머리카락 길이를 3밀리만 남기고 자를 것인지 6밀리를 남길 것인지 선택의 여지를 준다. 망설이는 친구를 향해 함께 온 친구가 천연덕스럽게 박박 밀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며 으름장을 논다. 원장님은, 친구라면 함께 잘라야 마땅하니 둘 다 똑같이 자르자며 외려 되받아 화살을 날린다. 그런데 능청스러운 그 녀석 왈, 자기는 160등을 하는 처지라서 자를 필요가 없단다. 참으로 맹랑한 녀석이었다.

공손히 인사를 하고 떠난 학생들의 자리가 훈훈하다. 지금은 고등과정이 힘들다고 생각되겠지만 언젠가 학창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날 것이다.

훗날 대들보가 될 녀석들, 생동감이 넘치는 미래 지기 희망이 나에게로 전이되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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