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 텍스트에서 읽는 2015년의 여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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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텍스트에서 읽는 2015년의 여름 풍경
  • 충청리뷰
  • 승인 2015.07.0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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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연규상 (주)열린기획 대표

▲ 연규상 대표

고전이란 무엇일까? <톰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모두가 칭송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말한다. 현대 환상문학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이탈로 칼비노도 “사람들이 보통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이 말은 비아냥이라기보다는 회한에 가깝지만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증을 유발하면서 처음 읽더라도 ‘다시 읽고 있다’고 위선을 떤다는 말에, 속내를 들킨 기분이다. 이런 책들은 대개 고전(古典)이 아니라 고전(苦戰)이다.
 

몇 년 전부터 일삼아 고전을 읽고 있다. 짧은 시간에 즐기도록 압축된 ‘스낵컬처’에 길들여진 내 뇌는 이미 천오백 쪽에 달하는 도스토예프스키류의 디테일을 견디기 힘들다. 그런 내가 맞춤한 책을 찾았으니,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등 ‘테베(Thebe) 삼부작’을 포함한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들이었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무엇보다 길이가 짧아 좋았다. 다시 읽어도 처음 읽을 때처럼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도 놀라웠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괴테, 헤겔, 프로이트,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이력까지 있다니 알량하나마 지적 액세서리로도 그만이었다.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펴냄.

<오이디푸스왕>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가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희곡이다. 최근 ‘국회법 개정안’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과 입법부가 대치한 장면은 오이디푸스가 불운한 신탁을 피해 떠난 길에서 부지불식간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는 운명적 ‘삼거리’에 도착하는 장면과 고스란히 겹친다.


오이디푸스는 삼거리에서 마차에 탄 한 노인과 마주치는데 이 노인이 바로 오이디푸스의 친부인 라이오스 왕이다. 누가 먼저 길을 가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지고, 모욕을 당한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를 살해한다. ‘세 갈래길’은 오이디푸스가 저주를 피하려다가 되레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이루게 되는 비극의 장소이자 상징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생존전략은 자신의 ‘정치적 친부’인 박근혜 대통령에 맞서 ‘친박’ 프레임을 깨야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적이다.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과거 청산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적 비극은 오히려 이를 ‘배신의 정치’로 보고 모욕을 주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더 짙게 드러난다. 대통령의 ‘정치적 친부’는 국민이다. 세 갈래길에서 먼저 길을 가겠다며 결국 여당의 항복까지 받아낸 끝에 대통령이 실종시킨 것은 국민, 정확하게는 ‘세월호’라는 민심이기 때문이다.
 

크레온의 ‘골든타임’과 메르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왕의 죽음 이후를 다룬다. 오이디푸스가 죽자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일 년씩 번갈아 테베를 통치하기로 약속하지만 에테오클레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폴뤼네이케스가 이웃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전쟁을 벌인다.


이 싸움에서 두 형제가 모두 죽고 외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된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를 애국자로 세워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주고, 폴뤼네이케스는 반역자로 몰아 시신을 들판에 버리도록 명령한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거스르고 오빠인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시키려 한다. 이 사실을 안 크레온이 안티고네를 동굴에 가두자 안티고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이 국가의 법을 대변한다면 안티고네는 자연법을 상징한다. 크레온은 국가의 법이 개인의 자유나 양심에 앞서야 한다고 강변한다. 강력한 명령과 복종으로 통치하는 국가주의자의 전형이다. 안티고네는 인간의 도리가 국법에 우선한다고 믿는다. ‘인륜’을 거스르는 ‘국법’은 악법이라고 죽음으로써 증거한다.
 

메르스 사태는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한 결과, 국민의 알 권리는 물론 생존권까지 위협한 사건이다. 크레온이 끝내 편협한 원칙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자 원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나서서 테베의 비극적 결말을 경고한다.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연인인 하이몬도 아버지를 외면한다. 위기의식을 느낀 크레온이 사태를 수습하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사이 안티고네는 목숨을 끊고 하이몬도 그녀를 따라 죽는다. 아들의 자살 소식을 들은 어머니(왕비)마저 죽으며 테베 왕국은 파국을 맞는다.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책이 꼭 이와 같았다. ‘세월호’ 이후 줄곧 ‘국가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했던 박근혜 정부는 이 작품의 마지막 합창에 귀기울일 일이다.
“지혜야말로 인생의 으뜸이다”
<안티고네>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란 무엇일까? 국민과 함께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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