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사회읽기/ Artist 2창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것만이 아닌 주변 도시의 문화와 그리스, 터키, 지중해 문화와 이집트, 아프리카, 페르시아 문화까지 혼용된 것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수용을 통해 완숙된 문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이탈리아를 넘어 타 국가와 유럽을 넘어서는 전 인류적 문화운동이 되었다. 1600년대 이탈리아 문화의 가치는 다른 문화, 문명에 대한 수용을 통해 발전시켰으며 이것은 철학과 사고를 다양하게 만들어 냈다.

▲ 마리아의 죽음 / The Death of the Virgin 1601-6

한 성질 하는 작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죠 (Michelangelo Merisi Caravaggio, 1571-1610)는 1600년대 강렬한 명암법으로 그림을 그린 자자한 명성이 있던 화가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카라바조로 잘 알려져 있다. 카라바조는 11세에 고아가 되어서 밀라노의 시모네 페테르차노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20세 전후에 로마로 청운의 꿈을 품고 작가로 살아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비참한 상황에서도 40여점을 그리며 이리저리 작품을 보여주던 카라바조는 1595년 그의 그림에 관심을 보인 교황청의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의 후원을 받으며 좋은 환경에서 작품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성질이 고약 했다. 동료 화가들과의 폭력,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등 돌출행동이 잦았으나 그의 천재성을 후원하던 사람들의 온정으로 그림을 계속 그렸다. 1606년 테니스 경기 중 점수에 대한 다툼으로 사람을 죽이게 되고 나폴리 등 다른 도시로 도망을 갔다. 그러나 가는 곳 마다 그의 명성과 죄는 계속해서 그를 따라 왔으며 불안한 상황에서도 많은 명화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을 감명시켰으나 그의 행동에 감정 상한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다.

▲ 의심하는 성 도마 /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02

카라바조는 자신의 불안감을 작품에 남겼는데 의심하는 사람의 본성을 표현 하였다. 그가 사람을 바라보는 불안한 정서를 그림 곳곳에 숨겨 놓아 재미를 더했다. 1601-6년에 그린 마리아의 죽음(The Death of the Virgin)은 물에 빠져 죽은 창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는 성스러움과 불경스러운 것이 나누어 질 것인가? 라는 물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수적인 카톨릭 카르멜회 수도승들은 그림을 거부했다. 그의 도전적 성격은 사람간의 마찰을 넘어서 종교에 대한 본인의 의견, 신화에 대한 자아적 해석 까지 이르렀다. 의심하는 성 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02, Neues Palais, Potsdam )의 모습은 인간이 가진 본성 자체이다. 손가락을 상처에 넣어보는 도마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을 보여 준다. 당시 그림은 12제자나 예수는 성인으로 일반인들과 다른 모습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아파하는 예수의 그냥 사람 같은 모습과 과학탐구의 진지함과 집중력이 묻어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을 신에 대한 것이 아닌 인간의 것으로 바꾼 것이다.

의심은 일상을 새로움으로 만들 수 있는 시도이다. 그림이 그려졌던 400년 전에도, 후에도 의심은 계속 되어왔다. 문화는 이러한 의심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봄이 오면 모든 곳에 꽃이 핀다. 감동의 꽃은 봄이 오기 전에 피는 꽃이다. 계절보다 먼저 피는 꽃이 봄을 부른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