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에 작업실을 둔 손차룡 작가가 노르망디를 오가는 사연
지난해 ‘코리아 라이브’행사 독일 드레스덴에서 기획해 호평

사진/육성준 기자

손차룡 작가(60)작가는 프랑스에서 작업을 한지 10년이 넘었다. 문의면 도원1리 마을회관에 작업실을 둔 그는 1년의 대부분은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아뜰리에에서 생활하다가 가끔 이곳에 온다. 하지만 오랫동안 빈 공간이 아닌 듯 작업실에 있는 붓도, 물감도, 캔버스도 여전히 생기를 발했다.

작업실에서 작가는 새로 바뀐 마을 이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끔씩 출몰(?)하는 작가에 대해 마을사람들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런 물음에 그는 소탈하게 웃어보였다.

손 작가는 보은 출신이다. 청주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기산 정명희 선생을 찾아가 사사를 받는다. 90년대 초반 문의에 작업실을 내고 작업에 정진했지만 기대만큼 화가의 삶은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흔 중반이 된 그는 마지막 결심을 하게 된다. 2000년 모스크바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 초청을 받게 됐는데 이 전시회를 할 건지 말건지를 두고 화가인생을 건다. 만약 이번 전시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붓을 꺾겠다는 각오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용기가 생겼어요. 그림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 다음해 뮌헨에서 전시회가 열리게 됐다. 문의에서 열렸던 ‘아홉용머리’환경예술제에 온 외국작가들의 초대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에서 전시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2004년 운명적인 한 사람을 만난다. 바로 손 작가의 후원자 안사빈씨다. “독일의 한 갤러리에서 관람객들을 위해 퍼포먼스를 할 때였어요. 외국사람들이 대개 정해진 것 외에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죠. 힘들게 오게 됐는데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해진 것 외에도 더 많은 것을 보여주니까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고, 소문이 퍼져나갔어요.” 그 소문을 듣고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안사빈씨가 그에게 프랑스로 건너와 작품을 보여 달라고 했다. 손 작가는 흔쾌히 이러한 제안에 응했고, 처음 프랑스에서 만남을 갖게 된다. 이후 그는 안사빈 씨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에서 작업을 하게 됐다.

안사빈 씨는 독일사회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가 사람이다. 현재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안사빈 씨는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예술가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후원을 하고 있다. 멀리 한국에 있던 손 작가와 독일인 안사빈 씨의 처음 만남은 작가와 후원자였지만 지금은 ‘가족과도 같은 사이’가 됐다고 한다.

“처음에 안사빈씨가 프랑스에 작업실을 내준다고 했을 때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가족들을 다 데리고 갔을 거예요. 하지만 전 저 혼자 떠났어요. 후원자에게 화가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누드크로키 작업부터 했어요. 이제는 동양화의 기법으로 노르망디 풍경을 그려내고 있어요. 조금씩 그들의 문화에 다가갔고, 이제는 한국의 문화를 그 나라에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어요.”

손 작가가 저 멀리 외국인 후원자를 만난 건 어쩌면 꿈같은 일이다. 노르망디에서 4층 건물을 쓰고 있는 그는 몇 해 전 1층에 ‘손차룡 갤러리’까지 냈다. 손 씨는 노르망디에 있으면서 한국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그러다가 지난해엔 안사빈 씨가 후원하고 손 작가가 기획한 ‘코리아 라이브 페스티벌’을 독일 드레스덴에서 9월 12일부터 28일까지 개최했다.

사물놀이, 설치미술, 워크샵, 한국음식페스티벌, 한국음악 등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페스티벌로 한국관광공사, 독일한국문화원등이 참여했다. 지난번 행사에 참여한 미술, 음악, 공연 워크숍 작가들은 총 176명이었고, 직접 현지에 온 작가는 66명이었다. 청주에서는 박노상, 조동언, 김태헌, 유필무, 강호생 씨 등 10여명이 독일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이 모든 비용은 안사빈씨와 그의 동생 안드레스 씨가 후원했다.

“전 세계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기업인데 훌륭한 문화를 갖고 있어요. 직원이 되면 평생 해고하지 않고, 이윤은 곧 사회를 위해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후원이라는 것도 후원을 받은 사람들이 평생 살면서 무엇으로든 쓸모 있게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보죠.”

이들은 올해 연말에 코리아 라이브 페스티벌을 노르망디에서 열 예정이다. 2017년에는 다시 대규모 아트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이 모든 행사의 기획자는 손 작가다. “가슴 벅찬 일이죠. 외국인이 지원해서 이렇게 한국의 문화를 보여준 것은 아마 처음일거에요. 내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해요.”

그러고 보니 그의 그림엔 늘 별자리가 등장한다. 손 작가 80년대 후반 별자리 공부를 접하게 되면서 이후 작품마다 별자리를 새기고 있다. “왜 별자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러면 하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줘요. 밤이나 낮이나 우리는 하늘과 함께 살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때부터 별자리에 관한 책이 전해지고 있고요.”

그는 앞으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진짜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유럽에 그의 이름 세 글자를 새기고 싶다고. 그래서 그는 오늘도 사유하면서 작업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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