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표(충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 이장표(충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영령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살아 남은 우리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지난 8. 1. 서울 서부경찰서 소속 형사 두 분이 범인을 검거하다 범인이 휘두른 칼에 난자 당하여 순직하였습니다
순직한 형사들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두 형사의 죽음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경찰관들에게는 언제든지 이 들의 주검이 내 자신의 얼굴에 덧씌워질 수 있는 현실에서, 결코 남의 주검이 아니고 바로 내 자신의 주검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두 형사가 칼에 찔린 커피 숍 주인의 말에 의하면 두 형사는 칼에 찔리면서도 범인을 잡기 위해 끝까지 범인을 잡고 사투를 벌이다 범인이 휘두르는 칼에 무참히 찔려 힘이 빠져 늘어진 후에야 범인 이학만이 도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인들의 사명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케 하는 증언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어야 합니까?
국가는 경찰에게 무한한 충성과 사명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경찰관들이 무한한 충성과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경찰살이를 하면서 위험을 감수하여야한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겁이 나기 시작합니다.비단 한 육신이 불에 타서 땅에 묻혀야 하는 죽음만이 겁나는 것은 아닙니다.내가 죽은 후, 내 가족들의 사회적 처우와 생계가 더 겁이 나는 것입니다

 이번 두 형사의 죽음에 따른 보도에서 보듯이 고 이재현 형사의 경우 죽음 값이 4,000여만원이고, 고 심재호 형사의 경우 이것저것 하여 1억원이 조금 웃도는 보상과 월67만원 정도의 유족연금이 있다고 합니다. 이 돈으로 미망인과 네살된 아들, 돌도 안 지난 딸을 어떻게 양육하란 말입니까?

 간첩도 아닌 중요 범죄 신고만 하여도 최대 5,000만원의 신고 보상금을 받는데 경찰관의 죽음 값은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요?

 이는 유신 정권의 잔재에서 기인합니다
 월남전 파병 용사들이 상해를 입어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쏟아질 것에 대비하여 아래와 같이 국가 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 조항에 인권 유린적 독소 조항을 만든 것입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①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거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의 규정에 의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는 때에는 이 법에 의하여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다만, 군인ㆍ군무원ㆍ경찰공무원 또는 향토예비군 대원이 전투ㆍ훈련 기타 직무집행과 관련하거나 국방 또는 치안유지의 목적상 사용하는 시설 및 자동차ㆍ함선ㆍ항공기 기타 운반기구 안에서 전사ㆍ순직 또는 공상을 입은 경우에 본인 또는 그 유족이 다른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재해보상금ㆍ유족연금ㆍ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이 법 및 민법의 규정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경찰공무원의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국가의 고의 또는 과실과 위법 등을 불문하고 일체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동법 규정을 근거로 대한손해보험협회에서는 경찰공무원이 피보험차량 탑승 중 전사ㆍ순직 또는 공상을 입은 경우 보상하지 않는다는 관용자동차에 관한 특별약관을 제정, 1986년 9월 8일 재무부의 인가를 받아 이를 시행함으로써 경찰관이 순찰차량에 탑승 근무 중 교통사고 발생으로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 자동차보험 배상을 받을 권리까지 박탈하고 있어 사고발생 시 공무원 연금법상의 보상이외에 아무런 보상대책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법 제정 당시야 국가 경제력이 미약하여 어쩔 수 없었다하더라도 세계 10위권의 무역량을 자랑하는 오늘의 대한 민국에서 이게 될 말입니까?

 항상 순찰차량을 운행하던, 형사 기동대차량을 운행하던 관용차량을 탈 수 밖에 없는 경찰관들에게 법이 이쯤 되면 이게 법이란 말입니까?
 그렇다고 평소에 다른 직렬의 공무원보다 월등한 보수를 지급하는가요?
아니, 오히려 정년퇴직(그때까지 살아 있을라나?) 때까지 평균 급여를 따져 보면 승진 폭의 협소를 비롯한 불합리한 제도 등으로 인하여 일반직 공무원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급여를 받습니다
 이러한 법령들은 항상 신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찰관의 직무의욕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대책마저 보장하지 않는 인권 유린적 규정입니다
 
 독일의 법철학자 라드부르흐(G. Radbruch)는 1945년 9월 12일 라인-네카르신문에 "5분간의 법철학"이란 제목의 기고에서 "법은 정의를 향한 의지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요? 죽음 값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이 정의입니까?

우리 나라에 진정 법이 살아 있나요?
우리 나라에 진정 공권력은 살아 숨쉬고 있나요?
경찰관들의 소극적인 근무로 인한 사회불안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국민입니다
 
 국민이 진정 경찰에 대한 투자가 사회간접 자본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런 독소 조항을 그대로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위정자들께 간청하오니 이러한 독소 조항을 하루라도 빨리 고쳐 주십시오. 대다수 국민들도 이러한 독소조항을 제거함으로써 경찰들에게 왕성한 활동을 요구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독소조항이 제거되지 않는 한 전 애비로서 경찰관이 되는 게 꿈인 아들의 꿈을 바꾸는데 힘을 모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 내 아들이 경찰관이 되는 날이 올 것을 희망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한계를 알고 있고 실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살해범 이학만도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인들을 추모하는 사이버분향소(http://www.polnetian.com)를 마련하였습니다. 영령들이 이승을 완전히 떠나는 49제까지 이 사이버 분향소를 운영할 것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시민들의 방문을 기대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은 많지만 고인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49제인 9월 18일 대전 현충원에서 고인들을 뵈올 것을 약속드리며 두서없는 글을 마칠까 합니다.

구천의 영령들이시어, 살아 있는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굽어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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