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허상과 부끄러운 기억들을 비춰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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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허상과 부끄러운 기억들을 비춰주는 소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5.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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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의 철학 같은 소설 <전락>

책·책·책/ 서명석 (주)블루소프트 대표

▲ 전락 알베르 까뮈 지음 유영 옮김 창비 펴냄

책 <이방인>으로 잘 알려진 알베르 까뮈는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철학을 전공했고 2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경험하였으며 저널리스트,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까뮈의 작품은 ‘부조리’라는 일관된 테마를 가지고 있다. <이방인> <시지프 신화>그리고 지금 소개할 <전락>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부조리를 경험하고 어떻게 부조리와 함께 살아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락>은 제목 그대로 어떤 상황에서 아래로 추락한 상태이다. 부조리(모순)를 경험하고, 전락(추락)하고, 이에 저항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저항한다는 것이 부조리한 국가나 제도, 사회에 대한 (외적인)저항이 아니라 개인의 삶(존재)에 대한 부조리(모순), 그리고 (심리적)저항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독자에게 고백하듯 말하는 ‘나’는 변호사이며 허영과 자기애에 빠진, 비겁하고 특권의식으로 가득 찬 속물이었다. 높은 지위와 명성, 멋진 외모로 주위의 칭찬과 부러움을 즐기며 스스로 만족하던 그에게 어느 날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다리 위에서 지나친 여성이 곧 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변명하던 자신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는 지금껏 어려운 사람을 돕고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 하다고 여겼지만 정작 몇 걸음 뒤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구하지 못한 채 외면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가져왔던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고, 자신의 비겁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아 끊임없이 환청을 듣게 되며 결국 그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변화는 새로운 안정을 찾지 못하는 혼돈의 지속이었다. 그는 자신의 비겁한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열된 정신 상태를 보이며 고통을 잊기 위해 쾌락에 빠지고 다시 비겁한 자신을 마주하는 고통의 연속이 된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심판과 독설과 조롱들이 내 위에 쌓여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멍하니 웃으며 만사가 잘 풀리고 있다는 환상에 젖어 살았습니다. 내가 경계심을 갖게 된 날부터, 정신이 번쩍 들고 진상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나는 온갖 상처를 한꺼번에 받았고 단번에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온 세상이 나를 에워싸고 웃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인간도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은 고약하게 구는 것뿐이지요. 그러면 다들 자기가 심판받지 않으려고 서둘러 남을 심판해대거든요. 어쩌겠습니까? 인간이 품는 가장 자연스러운 생각, 마치 저 본성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듯 저절로 드는 생각은 바로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생각인 것을.”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비겁함과 직면

주인공의 말을 듣는 상대는 바로 독자가 되며 ‘너도 그렇지?’ 하며 되묻는 듯하다. 하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 전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책 뒷부분은 소설인데도 여러 지면을 할애해 별도의 작품해설을 하고 있다. 해설을 소설보다 먼저 읽어야 카뮈가 <전락>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은 늘 세계와 갈등을 맺고 이율배반적인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여 문제 삼지 않거나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게 순종함으로써 인간의 힘으로는 증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이 문제를 떨쳐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까뮈는 어떤 답을 얻었을까? 바로 '반항'이다. 영원과 순간, 불명과 필멸, 무한과 유한,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모순에 맞서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은 무기력한 자살이나 종교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운명과 세계에 굴하지 않고 반항하는 행위 자체가 삶의 의미이자 존재이유가 되는 것이다.”

까뮈의 문학은 압도하는 현실, 허약한 육신, 공포스러운 죽음 앞에서 굴하지 않으려는 정신의 저항과 그 존엄함을 담고 있다. 끊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려야 하는 시지포스는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이 행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을 짓누르는 힘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노력 자체가 그의 삶의 의미이자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전락>은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자신의 비겁함, 그리고 자기합리화와 부끄러운 기억들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만일 내가 그 <전락>을 경험하게 된다면, 즉 나를 포장한 삶에 허상들과 그럴듯한 변명들을 자각하는 순간이라면, 어떻게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고 스스로의 부끄러운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독자에게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던져준다. 가벼운 소설로 인사했다가 묵직한 철학으로 덮게 되는 까뮈의 <전락>은 이렇게 문학과 철학이 동시에 존재하며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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