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 읽기

푸른 오월
노천명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 속에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냄새가 물씬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에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허장무 글·이은정 그림>

궁핍하고 피폐했던 60년대 초,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 시에 필이 꽂혀 무심코 달달달 외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4. 19 무렵, 그때는 결핍의 시기, 너나없이 사는 게 그렇고 그랬던 때. 늘 남루와 허기 속에 그래도 꿈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흙먼지 풀풀 나는 학교 길을 달리던 소년시절이 있었지요. 꿈이 없으면 어떤 성취도 없는 법. 이루지 못할지언정 꿈을 향한 열정과 노력은 가득했습니다.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위로처럼 가슴으로 밀려드는 푸른 언어지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의 여왕 오월의 여신’은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을 지녔고요. 얇은 고독과 비애마저 묻은 감성적인 언어들이 사람을 얼마나 감동 시키던지. 모름지기 이렇게 가슴을 따라 쓰는 시가 좋지요. 언제나 희망을 밀고 나가는 힘은 머리가 아니고 심장이니까요. 감각을 흔드는 이미지 하나하나가 가슴을 출렁이게 합니다.

노천명은 1912년 황해도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고 오래 동안 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중 재생불능성 뇌빈혈로 4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생전에 <산호림>을 비롯한 세권의 시집을 간행하였고, ‘사슴’, ‘장날’, ‘남사당’, ‘푸른 오월’,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 다른 여성시인들과 구별되는 명확한 시세계를 지닌, 시다운 시를 최초로 쓴 여류시인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깡마르고 조금 큰 키에 남색 치마와 흰 저고리를 즐겨 입던 시인의 일생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궁색한 개화기, 너무 순정한 나머지 삶과 사랑이 서툴렀던 시절, 첫사랑의 실패는 평생 독신으로 그를 고독과 비애 속에 가두게 되지요. 태평양 전쟁의 와중에 발표한 십여 편의 시는 ‘친일문학인’이라는 씻지 못할 오명의 족쇄를 채워주고, 또한 6. 25전쟁 때는 미처 피난하지 못하여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죄로 부역 혐의로 일시 투옥되기도 합니다. 비루하게 살기에는 너무 길고, 귀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은 게 인생이라 하던가요. 험난한 시기에 태어나 역사의 격랑 속에서 가시나무 새처럼 살다간 시인의 짧은 생의 질곡이 한국 근대사에 슬프게 투영됩니다.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전후 독일 사회의 양심을 상징했던 작가 ‘권터 그라스’는 ‘양파 껍질을 벗기며’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나치에 복무했던 사실을 폭로하면서, 양심고백을 통한 찬반 논쟁이 격렬했지요. 당시 뒤늦은 고백에 대한 비판과, 과오를 인정한 그의 용기를 옹호하는, 두 여론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시인의 경우, 역사는 그를 몹시 꾸짖을지언정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여, 이제 길고 먼 유형의 아픈 시간을 걸어 나오시라. 그리하여 당신에 의해 명명된 ‘계절의 여왕 오월’에 ‘감미로운 첫여름’을 ‘종달새’처럼 훨훨 날아올라 보시라.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