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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는 아픈 ‘오월’의 역사를 읽어야 한다소설가 한강의 화제작 <소년이 온다>
책·책·책/ 오혜자 청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장
▲ 오혜자 청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장

‘오월’은 35년 전 광주의 열흘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 광주를 담은 이야기다. 작년 5월 19일 출간된 이후 한 해 동안 화제의 책, 올해의 책, 만해문학상 수상 등으로 뜨겁게 주목 받았다. 다시 오월.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서 나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검은 바탕에 흩뿌려진 안개꽃 위로 주홍색 ‘소년이 온다’는 표제가 너무도 선명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첫 장을 넘겨야만 할 것 같았다. 깊은 잠 같은 어둠을 뒤로하고 소년이 온다니. 뒷 표지면에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이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는 평론글을 먼저 읽고 휘청거릴 준비도 했다.

▲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펴냄.

책장을 넘기며 작가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오월’을 증거하고 되새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한강이라는 소설가는 도대체 얼마나 깊이 들어갔던 것일까. 어떻게 하면 주검으로 누운 소년의 영혼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토록 상세하게 재연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날 그 시간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등장인물들이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내는 것을 지켜보는 작가의 모습이 느껴졌다. 215쪽, 무게감이 그리 느껴지지 않는 책 한 권을 읽고 누구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하고, 누구는 작가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작가는 담담한 문체, 나직한 어조로 그날의 황망한 주검들을 일일이 어루만졌다. 작가가 소년을 ‘너는’이라고 부르니 독자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됐다. ‘너(동호)’는 정대를 찾아야 했다. 정대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도 몸을 피했기 때문이다. 정대를 찾지 못하면 정대누나가 얼마나 원망을 할 것인가. 너는 정대처럼 총탄에 쓰러진 사람들을 추스르다 그날 도청에 남았다. 열여섯인 네가 어떻게 친구를 남겨두고, 처참한 주검들을 수습하는 어린 누나들을 남겨두고, 어떻게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을 남겨두고 자리를 피할 수 있었겠나. 작가는 우리의 마음자락을 잡아끌어 ‘너’로 부를 만큼 가까이에서 ‘오월’의 혼백을 위로할 수 있게 했다.

읽는 이를 무대로 끌어내는 위로의 굿판

살아 남겨진 사람들도 위로받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고 고마운 일이다. 제주 4·3을 담은 오멸감독의 독립영화 <지슬>도 그랬다. 영화의 시작부터 초혼의 제의를 연상케 해 긴장하게 했다. 지난해 ‘책읽는청주’ 선정도서였던 <나흘>도 그랬다. 영동 노근리 쌍굴에 새겨진 총탄자욱을 어루만지며 이현수 작가는 자신과 노근리의 퍼즐을 맞춰나갔다. 이현수 작가의 고향이 영동이었고, 오멸도 한강도 각각 제주와 광주가 고향이다. 이들 모두 숙명처럼 만나야 하는, 미뤄둔 숙제와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결국 풀어내고야만 작가들이다.

다시금 작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어서 이들 만큼 역사를 감당할 내공이 없는 것이 내세울 일이 아닌 만큼, 스스로 마주하고 풀어야할 숙제는 해야 할 것 아니냐는 물음이 가로막는다.

생각해보니 80년 5월에 그곳에 있던 소년과 같은 또래였다. 소년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내 나이다. 몇 년 후 대학을 다니며 ‘오월’을 알게 되었고, ‘오월’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 역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등의 의문과 분노를 담은 노래와 함께 청춘이 시작됐다. 나중에 친구들로부터 “그 때 하도 엄숙한 표정을 지어 네 앞에서 크게 웃지도 못했다”는 놀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소년이 온다> 책 후반에 낯익은 노래가 나와 따라 불러보았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좋다 좋다/ 같이 죽고 같이 산다/ 좋다 좋다/ 무릎 꿇고 살기 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엄혹한 시절에 이런 낭만적인 노래라니. 정의파라니. 기실은 상처투성이였다. 삶도 서툴렀던 20대에 누구를 보듬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같이 죽고 같이 산다 하고도 이후에 머리깎고 산으로 간 후배를 찾지 않았다.

자신만의 미래를 입에 올리지 않던 친구들이 있었던 것도 잊고 지냈다. 돌아보니 저 자신도 까마득히 어렸던 선배들이 져야했던 책임의 무게가 새삼 안쓰럽다. 모두 몸 살피시고 평안하시기를. 읽어내는 것도 힘겨워하며 작가가 펼쳐놓은 위안의 굿판에 숟가락 하나 얹어보았다.

충북인뉴스  043si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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