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노동인권센터, 노동절에 바라본 인권 현실 공개
방송사·명문고·대기업 구분 없이 비정규직 편법 고용

▲ 지난 4월 25일 제125주년 노동절을 앞두고 민주노총충북본부가 상당공원에서 파업집회를 개최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이나 방송사 조차도 노동권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고용을 피하기 위해 카메라기자를 프리랜서와 기간제 근로계약을 반복적으로 맺는가 하면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고용을 학부모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모 대기업 청주공장에서는 불법파견 사실이 고용노동부에 적발되기도 했다. 군청, 도교육청 등 정부기관 조차도 정규직 고용을 피하기 위한 편법을 동원했다. 노동권은 자유권, 생명권과 더불어 3대 천부적인 3대 인권인 사회권의 핵심요소이지만 우리사회는 아직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0일 청주노동인권센터(대표 김인국 옥천성당신부‧이하 노동인권센터)는 ‘상담통계와 사례에서 드러나는 충북노동인권의 현실’을 발표했다. 노동인권센터는 5월 1일 노동절을 전후해 매년 인권실태를 발표해왔다.

노동인권센터가 발표한 실태에 따르면 정부기관인 공공 부분에서조차 비정규직 고용을 위한 각종 편법이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천군은 정규직 고용을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려막는 편법을 사용했고 교육청은 원어민 강사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근로계약시간을 주당 1시간 줄여 계약하기도 했다.

청주의 모 방송사는 카메라 기자를 프리랜서와 기간제 계약을 반복하는 식으로 정규직 고용을 회피했다. 정부와 공공기관 조차 노동인권을 홀대하다 보니 민간부분은 더 심했다. 모 대기업 청주공장은 불법파견 사실이 고용노동부에 적발됐다.

일하는 도중 인대가 파열된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사장은 산재처리를 하지 않았다. 부모 동의를 얻지 않은 채 미성년자를 고용해놓고 업주가 오히려 부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3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채 노동을 강요당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도 있었다.

50~60대 여성이 주로 일하는 노인요양시설에서는 ‘서약서’와 같은 방식으로 근대적인 ‘노예계약’ 수준의 근로계약을 강요하기도 했다. 노동인권센터가 공개한 각종 인권침해 사례를 공개한다.

 

△ 프리랜서 2년, 기간제 2년 반복하는 방송사

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청주의 모 방송사에서 일하는 카메라 기자는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했다. 그 이전 2년은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어 일을 했다. 하는 일은 프리랜서나 기간제 노동자나 똑같고, 모든 지휘감독은 회사로부터 받았다. 그런데 노동인권센터를 찾은 카메라 기자는 회사가 기간제 2년 계약이 곧 만료하는데 재계약을 않겠다고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노동인권센터는 2년이 넘으면 법에 따라 기간을 정하지 않은 신분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방송사가 이를 피하기 위해 프리랜서와 기간제 계약을 반복한 것으로 분석했다.

 

△ 업무지시는 학교, 고용은 학부모회

청주의 모 야구명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 학교는 야구부 감독 월급만 학교가 부담하고 대부분의 운영경비는 학부모들이 회비를 걷어 충당한다. 이 학교에는 야구부 전용 버스가 있는데 소유자는 학교다. 하지만 버스 운전 기사는 학부모회장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물론 임금도 학부모회장이 준다. 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운전기사의 모든 업무지시와 결재는 학교에서 관장했다. 최근 7년 동안 근무한 운전 기사가 퇴직하는 과정에서 퇴직금 정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노동인권센터는 “모든 업무지시는 학교가 한 것인데 학교가 아무 책임도 안지겠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려막은 옥천군

옥천군 보건소에서 방문간호업무를 수행하던 기간제 노동자 6명이 지난해부터 차례로 집단해고를 당했다. 노동인권센터는 ‘해고’라는 입장이었지만 옥천군의 입장에선 ‘계약기만 만료에 의한 계약해지’일 뿐이었다. 노동인권센터는 옥천군이 무기 계약직 전환에 소요되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해고를 한 것으로 분석했다. 기간제법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계약 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해고 이후 옥천군은 이들의 빈자리를 또 다시 1년 짜리 기간제 노동자로 돌려 막았다. 노동인권센터는 “옥천군의 이러한 행위는 법을 떠나 매우 부도덕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 대기업에도 만연한 불법파견

대기업에도 불법파견이 성행했다. 노동인권센터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의 사내협력업체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부 아웃소싱업체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아 6개월 간 일하게 한뒤 자기 직원으로 전환시켜 왔다고 밝혔다. 아웃소싱회사에 일한 6개월은 자기 회사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한 노동자는 퇴직금과 상여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센터의 법률지원을 통해 미지급 임금을 지급받기도 했다. 이와는 별도로 모 대기업 청주공장이 불법파견으로 고용노동부에 적발됐다.

 

△ 구멍이 뻥 뚫려야 장갑을 교체해주는 회사

원청회사는 꽤 유명한 화장품 제조업체이다. 노동인권센터는 그 회사의 사내협력업체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증언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 회사 사장은 한 달 근무하면 한 달 치 월급을 다 주고 못 채우면 3일치 임금을 제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근무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쉴 장소가 없어서 서 있어야 할 형편이고 장갑도 구멍이 뻥 뚫려 도저히 쓸 수 없게 되어야만 교환해 준다. 노동인권센터를 찾은 한 노동자는 한 달을 못 채우고 그만뒀는데 3일치 임금을 안 주어서 이것을 받기 위해 센터를 찾았다.

 

△ 휴일·연차수당 안주려 근무시간 변경한 교육청

노동인권센터는 2014년 충북도교육청이 학교에 채용된 원어민 강사들이 주휴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 연차수당을 받지 않도록 근무시간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현재 근로기준법에는 1주에 15시간 미만 근무할 경우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휴가 등 노동법의 중요한 내용들을 적용받지 않게 된다.

노동인권센터는 “도교육청이 이들에 대한 노동법 적용을 회피할 목적으로 2014년부터 주14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인 사실도 확인했다”며 “이주민들이 현재 고용된 신분이기 때문에 장래를 걱정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청소년

노동인권센터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청소년의 상담이 늘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인권센터에 따르면 모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고등학생은 시급 4000원을 받고고 6개월을 일했다. 당시 2014년 법정 최저시급은 5210원이다.

노동인권센터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 찾아오는 학생의 다수는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밝혔다. 노동인권센터는 “청소년도 당연히 최저임금법을 적용받는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용돈을 번다는 이유로, 단순한 일을 한다는 이유 등으로 청소년에게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위법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 지금이 봉건시대인가요?

회사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서약서 또는 각서를 함께 서명 받아두는 경우가 있다. 노동인권센터는 이런 서약서가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내용이 있어 관련 상담이 늘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3개월을 근무하지 않으면 숙소 보증금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 지각하면 급여 중 36만원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 노조에 가입했는지를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내용, 비밀 서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월급을 반납 받고 퇴직금을 안 주겠다는 내용 등이다. 노동인권센터는 “노예 계약과 다를 바 없는 서약서들이 여전히 사업주의 요구에 의해 작성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청주노동인권센터는?

2010년 7월 28일 설립돼 노동자들을 위한 상담과 법률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0년 227건, 2011년 741건, 2012년 869건, 2013년 888건, 2014년 842건으로 노동인권 상담을 진행했다. 2015년 현재 상담 건수는 280여 건으로, 매월 70여 건의 상담을 하고 있다. 노동인권센터에는 2명의 노무사 등 4명이 상근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음성에 노동인권센터 지부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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