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 이재표 청주마실 대표

젓가락이 청주를 대표하는 ‘Only One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어령 2015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명예조직위원장이 지역사회에 던진 화두다. 이 위원장이 4월21일 열린 ‘생명문화도시 청주의 전략과 방향’ 특강에서 젓가락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청주사람 그 누구도 청주가 젓가락의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하지 않았다.

이 위원장이 한중일 세 개(청주, 칭다오, 니가타) 도시 교류사업의 명예위원장을 맡고 있고, 한중일 삼국이 예로부터 젓가락을 사용해온 대표적인 나라라는 점에서 젓가락을 교류의 매개로 삼자는 것은 매우 그럴싸한 제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청주의 아이콘인 직지, 명심보감, 소로리볍씨 등과 젓가락을 결합시키면 ‘청주만의 생명젓가락’이 탄생할 수 있다고 하니 갑자기 어려워진다. 왜 그런지,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구심마저 든다. 그런데 지성의 사유는 지성의 골을 타고 흐르는 것일까? 지역의 지식인들은 격하게 공감하고 있다. “이제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청주젓가락데이”라는 이 위원장의 선언 아래 순식간에 헤쳐 모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어령 위원장이 젓가락 얘기를 꺼낸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위원장은 2006년 펴낸 그의 명저 <디지로그-선언>에서 이미 젓가락 문화에 대해 돋보기를 들이댔다. 이 위원장은 이 책에서 한국의 젓가락 기술에 대해 “노이즈를 배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시스템 자체를 변환시키는 관계기술”이라고 정의하면서 “젓가락 문화 속에 살아 온 한국인은 정보기술을 관계기술로 바꿔주는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석학인 그는 저술 이전부터 젓가락에 주목했을 것이다.

이에 앞서 KBS는 2001년 1월 설날특집으로 다큐멘터리 <젓가락 삼국지>를 방영했다. 뭉툭하고 긴 중국의 나무젓가락, 짧고 끝이 뾰족한 일본의 나무젓가락, 모양과 크기는 중간형태지만 미끄럽고 무거운 한국의 쇠젓가락에 대한 비교를 통해 삼국의 역사와 문화를 톺아보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층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젓가락을 움직이는 손의 뼈와 근육을 보여주며 한중일 삼국의 섬세한 손재주가 젓가락문화에서 비롯됐음을 역설하기도 했다.

서양의 석학 중에서도 동양의 젓가락에 주목한 사람이 있다. 1980년 작고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 롤랑바르트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책 <기호의 제국>에서 음식을 찌르는 공격적인 서양의 포크와 달리 음식을 다치지 않고 들어 올리는 젓가락의 포섭적인 문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예찬한 것은 일본의 젓가락이었다.

초기의 젓가락이 나무였기에 젓가락의 역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문헌상으로 중국기원설에 토를 다는 학자는 없다. 대략 중국은 3000년 전, 한국과 일본은 각각 1800년 전과 1500년 전부터 젓가락을 사용했다고 한다. 젓가락을 청주의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것에 선점의 논리를 도입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종주국인 중국이 들고 일어선다면 논란에 휩싸일 것이 뻔하다. 강릉단오제가 2005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지정되자 중국이 ‘강릉단오가 중국단오를 훔쳐갔다’고 반발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청주시가 통합청주시 출범을 기념해 소로리볍씨를 형상화한 새 CI를 만든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알파벳 CJ를 합성해서 만든 디자인이나 6억원이 드는 예산에 대한 시비도 시비지만 소로리볍씨가 가진 대표성과 세계 최고(最古)라는 역사성에 대한 공감과 고증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청주생명젓가락과 마찬가지로 ‘왜 그런지, 과연 그럴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소통과 공유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학과 지성들은 쉽게 개념화하지만 평범한 시민들은 어리둥절하다. 지식의 권위는 뜻밖에도 지식인들을 일사불란하게 줄 세우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충분한 공감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젓가락이든 숟가락이든 소통과 공감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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