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 청주대 겸임교수,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 단편영화 출품
영화 <설화> 청주 배경으로 촬영, 청주시문화재단 제작지원받아

사진/육성준 기자

새해 첫날 우암산을 올랐다. 눈을 맞으면서 남자는 스텝들과 촬영을 했고, 나이 마흔이 됐다. 농담삼아 ‘마흔이 되면 뭔가 특별한 일이 생겨야 할 텐데’라고 남자는 속삭였다. 칸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게 된 청주대 김윤식 겸임교수의 이야기다.

새해 첫날부터 약 2주 동안 찍은 영화 <설화>로 그는 칸에 초청받는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1월 중순 촬영을 마무리하자마자 칸 영화제에 처음으로 작품을 출품했는데 연락이 왔다. 영화 <설화>는 이번 칸 영화제의 비경쟁부문 ‘쇼 필름 코너’에 선정돼 해외시장에 영화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칸 영화제가 선정한 단편영화라는 타이틀만으로 벌써 <설화>를 초청하겠다고 한 해외영화제도 여러 개다. 현재 20여개 국내외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설화>는 청주에서 촬영했다. 청주의 모든 산은 한 번씩 촬영하기 위해 올랐다. 영화에서는 청주의 산뿐만 아니라, 상당산성, 지하도, 버스터미널 등이 등장한다.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 스텝들과 함께 촬영을 하면서 발이 꽁꽁 얼었고, 나중엔 발에 붙인 핫팩마저 얼음이 돼버렸다.

<설화>는 죽기 위해 산에 오른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감독이 의도한 무지(블랙바)가 등장한 이후, 남자가 왜 죽으려고 하는 지 알려준다. 그러면서 관객에겐 왜 죽음에 대해 지루하게 여겼는지를 꼬집는다. 알고 보니 남자는 몇 해 전 아이를 잃었고, 수목장을 한 그곳에서 목숨을 놓으려고 한 것이다.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걸 확장해보면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감독은 죽음을 방조하듯 지켜본 관객에게 왜 방조했는지 되묻는다. 그는 가족이 겪는 아픔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아픔에 얼마만큼 공감하는 지 묻고 싶었어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순간, 나 자신은 눈 밖으로 내몰아졌다는 내레이션이 영화에 나오죠. 바로 그 얘기에요.”

김윤식 감독은 청주사람이다. 청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고 청주대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다. 청주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동국대에서 영화이론과 서강대에선 영화제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거처는 서울이다. 청주에선 2010년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다.

그는 2003년 첫 단편영화 <내일의 날씨 맑음>을 찍었다. 영화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공부하고, 일을 하느라 영화를 찍을 짬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 벌인 지역스토리랩 사업을 통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초기 비용을 지원받았다. 오랜만에 다시 찍은 영화로 그는 칸에 가는 쾌거를 이뤘다. 지역스토리랩 사업으로 청주를 배경으로 한 3편의 영화가 제작됐고, 설화는 그 중에 하나였다.

“영화는 늘 하고 싶었는데 솔직히 여유가 없었죠. 2003년에 제작한 영화에선 한 청년이 나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청년이 앞으로 10년 후엔 어떻게 될 까 고민했는데 지금 그 얘기를 다시 꺼내고 싶었어요. 10년이 지나 가장이 되고, 아이를 낳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더욱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주인공을 위로하고 힘을 주고 싶었어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배우를 새해 첫날부터 구하지 못해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넉넉지 못한 제작비를 아낄 요량도 있었다.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 분들을 섭외해 신년예배를 마친 후 상당공원으로 와서 무료급식을 먹는 장면을 찍게 했고, 친척들에겐 허름한 옷을 입혀 노숙자로 분하게 했다. 영화를 찍을 때는 청주대 영화학과 4학년 학생들 30여명이 나서 스텝역할을 했다. 스텝들은 모두 동상에 걸릴 정도로 애를 많이 썼다. 디지털 색보정은 CJ파워캐스트, 음악은 플루토사운드 그룹에서 무료로 진행해줬다. 학과 동기였던 정지훈 피디가 총괄 프로듀서 역할을 해줬다.

그는 스스로 ‘재밌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표정도 풍부하고, 리액션도 크다. 외모 또한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미생에 나왔던 배우 영업 3팀 대리 김대명 씨를 닮았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진지하고 무겁다. “지금까지 단편을 찍었지만 장편영화를 늘 계획하고 있어요. 그중에 하나는 종군 위안부 문제예요. 자료조사도 정말 많이 했는데, 빨리 찍고 싶어요. 이제 인터뷰 했던 분들 중에 정말 몇 분 남아 있지 않으세요. 우리가 꼭 해야 할 이야기를 당연히 해야죠.”

이밖에도 머릿속에 구상한 시나리오가 여러 편이다. “영화는 사회와의 소통이며 메시지라고 봐요. 항상 영화를 만들 때 왜 만들어져야 하는 가를 생각하는 편이죠.” 그는 아직 칸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작품은 초청받았는데 사람은 초청받은 게 아니라 자비로 가야 해요. (웃음) 이메일로 연락은 다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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