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세평/ 김윤희 충북문인협회 편집부장

▲ 김윤희 충북문인협회 편집부장

시새움달에 한바탕 홍역이 돌았다. 산수유와 개동백이 먼저 용기 있게 열꽃을 피웠다. 이에 힘입어 쭈볏쭈볏 꽃잎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겉으로 열꽃이 오르면 이내 홍역은 잦아든다. 다양한 삶이 본격적으로 봄 동산에 이름을 올렸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보아야 눈에 띄는 꽃다지, 제비꽃은 쑥스러움을 가득 안고 있다. 앙증맞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머문다. 휘휘 둘러보면 그저 쉽게 눈에 띄는 벚꽃, 개나리는 함께 어울려 핀다. 그들은 여럿이 어울려야 비로소 거대한 꽃무리를 이루어 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일시에 손잡고 나선 게다. 떨어져 내리는 꽃잎도 춤추며 함께 하기에 그 마저도 아름다울 수 있다. 올려다 보이는 목련의 우아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지만 곁에 소소한 꽃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결국 혼자 몰골 흉하게 툭툭 지고 말뿐, 봄꽃의 여왕노릇을 할 수가 없다.

일곱 빛깔 수필이 흐르는 강가를 거닐게 됐다. 그저 그런 개울물에 나만의 산책로를 만들어 이름 붙여본 강가다. 그동안 혼자 피고 진 꽃무리에 비로소 눈길이 간다. 각자 이름을 갖고 있었겠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풀꽃으로 발치에 머물러 온 것이다. 그들을 수필이 흐르는 그 강가로 불러냈다. 용기 내어 처음 이름을 올린 이들이 글눈을 트고 동행이 됐으면 싶다.

이 세상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으랴.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그들은 어버이를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나를 잊은 채 힘겨운 삶을 살아내느라 꽃인 줄도 모르고 이름도 없이 지내왔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거울 앞에 웬 늙은 여자가 얼굴을 내밀고 빤히 쳐다봐서 소스라치고 보니 그게 자기였더라는 한 여인의 말이 풀잎에 이슬처럼 맺힌다.

그들은 분명 꽃이었다. 자세히 보면 나이든 얼굴 한 구석에서 보일 듯 말 듯 꽃잎 하나 미소를 머금고 있다.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떨린다면서 자기의 삶을 어색한 듯 수줍게 풀어내는 모습에서 사랑을 품은 꽃망울을 발견한다. 조르르 강가에 나앉은 그들의 마음은 벌써 토끼풀꽃 손목시계를 만들던 시절로 시계바늘을 되돌리고 있다. 온 얼굴에 이미 화사한 꽃빛이 여울진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 한편이 강물에 떠 온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여러 갈래의 삶이 흐르는 강가를 거닐며, 이렇다 할 이름은 없었지만 아기자기 피어있는 저 풀꽃에게 오래 눈길을 주고 싶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꽃들에게 그에 걸 맞는 이름 하나씩 서로 붙여주며 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잡고 함께 거닐고 싶다. 여인의 삶은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풀꽃의 삶이 아니었던가. 살아온 날을, 살아갈 날을 스스로 풀어내며 한 송이 꽃으로 자신을 승화시켜 나갈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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