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쉼터’ 운영하는 고니스‧스니따 부부의 바람
“다른 일로 돈 벌 수도 있지만 동포 돌보는 일 중요”

100명 중 3명, 외국인들 한국살이
네팔 공동체

고니스‧스니따 부부(37)는 청주에서 ‘네팔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이 쉼터를 운영하게 되기까지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네팔에서 각각 수학과 컴퓨터를 전공한 부부는 충북대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예정됐던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공부를 포기할 상황에 놓였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한국에서 생활을 해나가기도 힘에 부쳤다.

설상가상으로 뒤늦게 한국에 온 남편이 비자를 끝내 받지 못해 불법 체류자로 연행되기도 했다. 만삭인 스니따 씨가 뱃속 둘째 아이 출산을 며칠 앞두고였다. 만삭아내를 둔 이유로 출입국에서는 고니스 씨에게 한 달 짜리 비자를 내줬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양수를 먹고 나와 그만 응급상황에 놓였고 남편이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수술비와 병원비도 700만원 가까이 나오게 됐다. 고니스 부부에게 모아놓은 돈은 300만원이 전부였다. 스니따 시는 “그때 기적이 일어났어요”라고 말했다.

▲ 고니스‧스니따 부부는 청주에서 ‘네팔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언젠가 네팔에 돌아가 고아원을 열 계획이다. 사진/육성준 기자

그들에게 일어난 기적

고니스 씨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CJB청주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성금이 모아졌다. 충북대병원에서 병원비를 지원해 줬고, 지역의 복지기관들이 나섰다. 충북대 총장도 도왔다. 고니스 씨 부부는 아이를 무사히 퇴원시켰고, 최소한의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이가 아프면서 남편의 임시 비자는 3개월로 늘어났다가 후에 정식비자도 발급 받을 수 있게 됐다.

그 일을 겪고 난 뒤 고니스 씨 부부의 삶도 많이 바뀌었다. 스니따 씨는 다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2012년 드디어 졸업장을 땄다. 2008년 시작한 공부가 끝을 맺은 것이다. 고니스 씨는 원래 수학을 전공하려던 계획에서 벗어나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는다. 지금은 한신대에서 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둘 다 힌두교 신자였지만 기독교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은 종교를 바꾼 것이다. 스니따 씨는 “네팔에 있을 때도 한국에서 지원하는 기독교 후원기관에서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일을 했어요. 그 일이 연이 돼서 충북대에서 전공을 살려 공부하게 됐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죠.” 스니따 씨는 아직도 계급이 철저하게 존재하는 네팔사회에서 최상류층인 브라만에 속한다.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이렇게 쉼터에서 언니, 오빠들과 같이 지내는 게 기쁨이에요.”

네팔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쉼터

고니스 씨 부부가 네팔인들을 위한 ‘네팔 쉼터’를 운영하는 것도 자신들에게 일어난 기적 때문이다. 부부는 처음에는 12평의 자신의 오래된 아파트 방 한 칸을 내줬다. 부부는 네팔사람들은 ‘네팔동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방이 2칸뿐이었고 이후 2칸 반으로 이사했어요. 그런데 여전히 너무 공간이 좁아서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2013년 8월에 다니고 있던 교회 목사님께 부탁을 했죠. 전세로 공간을 얻어달라고요. 그렇게 지금의 쉼터가 만들어졌어요.”

▲ 네팔 쉼터에는 많게는 40명 가까이 모이기도 한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네팔동포들이 모여 위로를 받고 미래의 희망을 품는다. 사진/육성준 기자

쉼터는 흥덕구 풍년로 주택가에 있다. 고니스 씨 부부의 집은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데 있다. 쉼터에는 3개의 방이 있는 데 많을 때는 40명 가까이 있을 때도 있다.

“저희들은 방송 한 번도 안했어요.(웃음) 여기 쉼터에 있었던 사람들이 나가서 알려주고 하니까 전국에서 와요.”

미나리 공장에 취업했다가 13시간 넘게 일하고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병까지 얻은 야자에 씨와 안드라 씨를 비롯해 지금은 10여명의 네팔동포가 함께 살고 있다. 안산, 부산에서 쉼터 얘기를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다.

전세금은 교회에서 지원해주지만 생활비를 마련하기가 녹록치 않는 상황이다. 스니따 씨는 “목사님이 5만원을 주시고, 저도 5만원을 내놓고 있어요. 그 외에 몇몇 사람이 후원해줘 23만원 정도가 모이는 데 겨울에는 난방비 때문에 적자에요. 쌀은 인근에서 20kg을 지원받는데 식료품 재료비는 모자라죠. 그래서 처음 오는 네팔동포에게 입소하면 1만원을 받는 데 이게 영 마음에 걸려요. 다들 어려운 상황이라 돈을 받고 싶지 않는 데 운영하려면 어쩔 수가 없네요”라고 말했다.

스니따 씨는 지근거리에서 쉼터를 돌본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내는 네팔동포를 위해 무료 통역에 나서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관을 연계하기도 한다. 남편은 틈틈이 알바를 해 수입을 마련한다. “솔직히 남편도 저도 돈을 벌려고 치면 한 400만원은 벌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네팔동포들을 돌보는 거에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 마음을 알기 때문이에요.”

“청주는 제2의 고향”

네팔사람들이 운영하는 쉼터는 전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교회나 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쉼터는 있지만 네팔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해 운영하는 공간은 유일하다. 고니스 씨는 “네팔 사람들끼리 있으니까 맘이 편해요. 네팔 음식도 만들어먹고 명절 때는 같이 모여서 보내요. 한국은 설과 추석이 큰 명절이잖아요. 네팔에서는 일주일 후에 비슷한 명절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같이 모여서 명절 음식도 만들어먹어요”라고 말했다.

한국사람들에 대해 고니스 씨는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청주에 있다가 석사 때는 서울 수유리에 학교가 있어서 매주 올라갔는데 갈 때마다 지하철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숨이 딱딱 막혔어요. 청주는 제 2의 고향이에요. 항상 그렇게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 한국이 이렇게 발전했다는 모습에 놀랐어요. 우리나라도 발전해서 네팔 형제 자매들이 지금보다 더 잘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부부는 쉼터살림이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네팔동포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앞으로의 계획은 네팔에 가서 고아원을 짓는 것이다. 부부는 “조금 더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가진 게 없어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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